2014년 초, 나는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 가입했다. 주 1회 글을 업로드하면 회원들이 댓글로 피드백해주는 방식이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갑작스레 떠올린 기억이긴 하나 문득, 지금도 접속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페이지를 찾아보니, 조금 놀랍게도 그리고 많이 반갑게도 모든 것이 그대로 있었다. 생활이 바빠지면서 나는 자연스레 글쓰기 모임에 요원해졌는데, 내가 빠진 뒤로 새 글이 얼마 올라오지 않은 것 같았다. 

 원체 회원이 몇 안 되었던 터라 활동이 금세 중단된 모양이었다. 나는 '그랬구나.' 하고, 삽시간에 추억에 빠져들었다. 업로드된 모든 글과 댓글들을 찬찬히 살펴봤다. 1년이 넘는 기간을 둘러보는 데에는 깨나 시간이 걸렸으나, 유의미한 여행이었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정신적으로 꽤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윤소영 님의 내면에는 무언가 파괴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라는 모임장의 피드백을 보아 그렇게 추정된다. 

 어쨌거나 이 글쓰기 모임의 모임장이 원주에 사는 사람이었다. 평생을 수도권에 살았던 나에겐 그 정도가 원주와의 연이었다. 8년간의 공백 뒤, 원주와 다시 연을 잇게 된 건 올 초부터다. 그것도 성수동으로 이사 온 뒤 알게 된 첫 동네 친구 덕분이었다. 

 영사 기사를 간단히 설명하면 극장에서 '영상 및 음향 관련 장비를 조작해 영화를 상영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직업이기도 하지만, 우연히 알게 된 동네 친구가 영사 기사라는 사실은 영화를 좋아하는 내게 큰 행운이었다. 같이 운동도 하고, 영화도 보고, 공연도 보며 취향을 공유한 기사님이 내가 틀림없이 좋아할 공간이라며 소개해준 곳이 아카데미극장이었다. 

 아카데미극장의 사진들을 보는 순간, 나는 기사님이 옳았음을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당시 아카데미극장에서는 극장 공유 프로젝트를 공모 중이었다. 일단 접수부터 해보자. 결과야 어찌 됐든 기사님과 나는 함께 동서울 터미널에서 원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2022년 3월 17일, 생에 처음으로 원주에 가게 됐다. 아카데미극장에 도착했을 땐 공간이 너무 좋아서 줄곧 흥분 상태였다. 옛날에 사용했던 물품들이 남아있는 것은 물론이고, 단관 극장에 살림집이 붙어있는 독특한 구조, 이제는 구할 수 없는 옛날 자재들이나 제작 기법들. 그야말로 시간이 멈춰있는 공간 같았다. 이런 공간에서 내 프로젝트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그리고 그 얼마나 좋을까 싶던 일이 일어났다. 아카데미극장에서 내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7월에 서울 비전문전문점에서 시작 후, 8월에 아카데미극장에서 진행, 9월에 최종 전시를 하는 나름 장기 프로젝트다. 서울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느낀 건 생각보다 사람들이 아카데미극장에 관심이 많다는 점이었다. 

 서울, 하남, 동탄, 목포 등 다양한 곳에서 오신 분들이 최종 전시가 열릴 아카데미극장에 관해 물었다. 그때마다 사진을 보여드리면, 다들 공간 자체가 멋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국내에서 원형이 보존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이라는 설명을 보태면, 이어지는 반응은 십중팔구 '전시도 볼 겸 원주에 가자.'였다.

 아카데미극장에 관심을 표하는 사람은 프로젝트 참여자에 그치지 않았다. 프로젝트 준비를 위해 아카데미극장에서 작업을 할 때마다, 사람들이 극장 문을 열고 계속 말을 걸어왔다. 여기서 앞으로 어떤 걸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전부 아카데미극장에서 무언가 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바로 저번 주 일인데, 극장 출입문에 시트지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시던 할아버지께서 내게 다가와 물었다. "여기 영화 상영도 하나요? 내가 중학생 때 여기서 영화를 봤는데……." 

 사람마다 가치의 우선순위가 다른 건 당연하다. 내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다른 사람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반드시 '가치 있게 여겨야만 하는 것'이 있지 않나. 온정이나 양심, 희생과 같은 관념적 개념뿐만 아니라 문화, 역사와 같은 것들이 그렇다. 아카데미극장은 그 자체로 문화이자 역사다. 가치 있게 여겨져야만 하는 유산이다. 

 앞으로도 사람들은 계속 아카데미극장을 찾을 것이다. 나와 같은 예술가들이, 예술가들의 작업을 보기 위한 사람들이, 정류장의 할아버지와 같은 기억을 가진 분들이, 그리고 가치 있게 여겨야 할 것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아카데미극장을 찾을 것이다. 몇 년 전 온라인 페이지조차 그대로 보존하기 어렵다. 60년의 역사를 보존해 온 아카데미극장을 온라인 페이지 삭제하듯 없애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윤소영 작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