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유투브 인스타그램

혁신도시 1호 주택·첫 번째 주민

박종수의 원주 문화유산썰-원주의 신석기 유적 박종수 전 원주시역사박물관l승인2022.08.08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 푸른숨 휴브래스 일원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주거지. 돌맹이가 놓인 부분이 불을 피우는 시설 노지이다. (원주 반곡동 유적 발굴조사 보고서)

원주에 사람이 살기 위하여 지었던 1호 주택은 어디에 있었을까? 또 그 집에 살았던 원주의 첫 번째 주민은 누구였을까?

흑요석을 날카롭게 다듬어 썼던 늦은 구석기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기술적으로 크게 발전을 가져왔지만, 그들은 집 없이 떠돌다 사라진 방랑자였다. 대략 1만 년 전 혹독하게 추웠던 마지막 빙하기가 지나고 구석기인들 대신 원주에 들어온 사람은 깨트린 돌을 갈아서 도구로 쓰기 시작한 신석기인들이었다.

▲ 신석기시대 집터가 발견된 원주시 반곡동 혁신도시 위성사진. 사진 위쪽 중흥 S클래스 아파트와 아래쪽 푸른숨 휴브래스 아파트가 세워진 곳이다.(네이버 지도에 대략적인 위치를 표기한 것임)

신석기시대 사람들 역시 구석기인들과 마찬가지로 강을 따라 원주까지 들어왔을 것이다. 한강줄기를 따라오면서 살기 좋은 곳에 정착하기도 하고, 다시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온 사람들은 흥원강(남한강)이 바라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에 살기도 했을 것이다. 

그들 중 용기 있는 몇몇 사람은 섬강을 거슬러 올라와 지정면에 정착하기도 하고, 호기심 강한 몇몇은 다시 원주천을 거슬러 올라와 반곡동 혁신도시에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구석기인들과는 달리 신석기 사람들은 한곳에 정착하여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누구누구의 땅이라고 땅 금을 긋고 토지 소유권이 정해진 것도 아니니 부지런한 사람들의 발길 닫는 곳이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주민등록 번호는 없지만 원주의 첫 번째 주민들이다. 

용기 있고 호기심 강한 신석기시대의 개척자들은 먹을거리와 물이 풍부한 반곡동 양지바른 곳에 흔적을 남겼다. 그 흔적은 수천 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다가 2008년 8월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서 2009년 12월 그들의 이웃 마을이 다시 발견되었다. 한강문화재연구원이 2008년 3월 착수하여 2010년 10월까지 조사한 원주혁신도시 건설 예정지 문화재 발굴조사 성과이다. 신숙정 원장은 신석기를 전공한 고고학자이니 더욱 기뻤을 것이다. 

이곳에서 찾은 신석기 유적은 치악산자락에 맞닿은 혁신도시 동북쪽 모퉁이와 원주천과 가까운 혁신도시 남서쪽에서 발견된 3개소의 신석기시대 집터이다. 혁신도시에서 발견한 신석기 유적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원주에서 처음 찾은 신석기시대 주거지로 5천 년 전부터 원주에 사람이 정착해 살았던 것을 입증해 주는 유적이다.

또한, 동해안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신석기시대 주거지는 해안이나 강가에서 발견되는데 원주 혁신도시의 신석기 주거지는 해발 180∼190m의 낮은 구릉에서 발견되었다. 이와 같은 사례는 흔치 않아서 영서지역에서는 처음 발견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혁신도시에서 발견된 3개소의 주거지는 대체로 장방형인데 1호 주거지는 40.7㎡, 2호 주거지는 6㎡, 3호 주거지는 9㎡로 크기가 다르고, 바깥보다 내부를 30㎡ 정도 땅을 파고 집을 지었다. 집 내부에서 불 피우는 시설도 발견되었는데 부뚜막이나 벽난로 대신 바닥에 돌을 설치하고 불을 피웠던 노지이다. 또 음식을 요리하거나 담아 두었던 빗살무늬 토기와 실을 감는 도구인 가락바퀴, 곡식을 가는 갈판과 갈돌도 찾았다. 

반곡동 원주혁신도시에서 찾은 신석기시대 주거지는 과학적인 연대 측정이 가능한 유기물(불에 탄 나무)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가장 오래된 시기는 4,540년(BP) 전으로 밝혀졌다.

▲ 신석기시대 집터에서 찾은 유물. 빗살무늬토기 조각과 가락바퀴.(원주 반곡동 유적 발굴조사 보고서)

이로써 반만년 전 원주 반곡동에 정착하여 터를 잡고 살았던 신석기 주민들은 방이 하나인 원룸에서 살았으며, 집안에 난방과 요리 겸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노지를 설치하여 음식을 조리하여 먹었고 실을 뽑아 옷감을 짜고 옷을 만들어 입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원주 혁신도시 그 어디에서도 전원 같은 마을 모습도 원주에 살기 시작한 첫 번째 주민들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수 십층의 고층 빌딩과 아파트, 곧게 뻗은 도로들과 서구식 주택들이 색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4천500년 전 신석기 사람들이 살았던 원주의 첫 번째 주택이 있었던 곳에 중흥 S클래스와 푸른숨 휴브래스 아파트가 건립됐다. 수천 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도 집 짓기 좋은 곳을 선택하는 기준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박종수 전 원주시역사박물관  wonjutoday@hanmail.net
<저작권자 © 원주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종수 전 원주시역사박물관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강원도 원주시 서원대로 158 5층(단계동)  |   등록연월일 : 2012년 04월 09일  |  등록번호: 강원 아 00125  |  사업자등록번호: 224-81-11892
발행인 : 심형규  |  편집인 : 오원집  |  대표전화 : 033)744-7114  |  팩스 : 033)747-9914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원민
Copyright © 2022 원주투데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