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석기시대 사람이 살았던 시기는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동물원이었다.

70만 년 전 원주에 첫발을 디딘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 살았을까? 치악산은 지금처럼 높았을까? 문막 뜰은 그때도 농사짓기 좋은 평야였을까? 그 시기에는 어떤 동물들이 살았을까? 70만년에서 1만 년 전까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랜 기간을 차지하는 구석기 사람들이 살았던 삶의 무대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원주에 처음 들어온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자연에서 추위와 더위를 견뎌야 했고, 돌로 만든 거친 도구, 뗀석기가 전부였으니 사냥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맨몸으로 자연에 맞서며 먹거리가 풍부한 곳을 찾아 끊임없이 옮겨 살았다. 수십만 년 전 구석기 사람들에게 자연은 드라마나 영화의 아름다운 무대가 아니라 생존의 무대였다.

수십 만 년 전 원주를 거쳐간 구석기 사람들이 살았던 지형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경기육괴에 속한 원주의 지형은 5억 4천만 년 전 선캄브리아기에 형성되었다. 원주는 화산활동이 없었으니 적어도 5억 년 전 부터 지금까지 치악산과 문막 들은 같은 모습이 유지되었을 것이다. 물길이 변하고 퇴적이 되면서 작은 변화는 있었지만 대체적인 산과 들의 모습은 지금과 같았을 것이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산과 들의 열매와 한강과 섬강, 그 두강으로 흘러드는 지류의 물고기를 잡아 배를 채워야 했다. 그들은 한꺼번에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그물이나, 지금 현대인이 짜릿한 손맛을 즐기기 위한 낚시로 고기를 잡는 방법은 몰랐다. 발달된 도구가 없으니 대개는 맨손으로 잡았을 것이다. 

10만 년 전 여름, 지금처럼 무덥고 장마 오기 전 강물이 깊지 않은 오늘 같은 날이면 지정면 월송리 섬강에는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는 구석기 사람의 무리를 만날 수 있었을 법하다. 오염되지 않는 맑은 강이니 고기를 잡아 날로 먹기도 했을 것이다. 

높고 낮은 땅의 모습은 지금과 닮았지만 기후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백두산을 비롯한 지구 여러 곳에서 화산활동이 있었고 4차례에 걸친 빙하와 간빙기가 반복되면서 기후는 크게 변했다. 기후가 변하면서 자연에 의지하면 살았던 식물과 동물의 종도 변화가 있었다. 구석기 사람이 살았던 무대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같은 무대에서 활동했던 등장 동물은 큰 변화가 있었다.    

원주와 가까운 단양 금굴에서는 여러 종류의 동물뼈가 발견되었는데 지금은 볼 수 없는 종이 많이 있다. 쌍코뿔이, 동굴하이에나, 큰꽃사슴, 말, 짧은꼬리원숭이와 추운 기후에서 살았던 동굴곰, 옛불곰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청원 두루봉 동굴에서는 옛코끼리상아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니 구석기시대 사람이 살았던 시기는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동물원이었다. 철창에 가두어 놓은 동물원이 아니라 그들과 치열하게 먹고 먹히는 경쟁을 했던 사파리였다. 원숭이들과 단 열매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어야 했고 코뿔소와 코끼리를 잡으면 몇일 배불리 먹을 수도 있었다. 또 하이에나로부터 잡은 코끼리를 지켜야 했을 것이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구석기 시대에 동물 사냥을 할 때 여성의 참여와 역할이 있었을 것이라는 연구가 발표되었다. 이 연구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대형 동물 사냥 같은 힘든 일 은 남성의 몫이고, 여성들은 출산과 육아에 충실 했다는 성 역할론을 뒤집는 결과이다. 코뿔소나 곰처럼 덩치 크고 사나운 동물을 사냥할 때 많은 사람이 필요했으니 여성이 사냥에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연구도 믿을만해 보인다.         

필자가 태어난 고향은 영월이고 선친의 고향은 원주 지정면 월송리이다. 그런 까닭에 유년시절 강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다. 여름에는 학교가 파하면 친구들과 함께 학교 앞 동강에서 시간을 보냈다. 대개는 물놀이였지만 가끔 물고기를 잡기도 했는데 맨손으로 물고기를 아주 잘잡는 동무들이 있었다.

그 동무에게는 수십 만 년 전 구석기 사람의 기술이 남아 있었는지 모르겠다. 잡은 물고기는 내장을 꺼내고 날것으로 먹기도 하고, 뜨겁게 달아오른 돌에 널어 말린 다음 저녁 무렵 집에 돌아가 어머니께 드리기도 했다. 그때(70년대) 월송리 월호 마을 앞 섬강은 무척 맑았다. 

박종수 전 원주시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