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계리 은행나무 그림으로 잘 알려진 최선길 작가는 충북 제천에서 나고 자랐다. 고등학교 시절 타지로 유학을 떠난 것을 시작으로 서울 생활을 거쳐 지금은 원주시 부론면에 자리를 잡았다. 지도 위 '부론'이라는 지명을 발견해 이곳을 찾게 된 것이 인연이 되었다. 그가 부론에 온 지가 벌써 7년이 다 되었다.

 최 작가는 이곳에 오기 전 예술고등학교와 대학 강단에서 십수 년의 세월을 보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진심으로 좋아했던 그는 "미술 교육에는 철학 교육이 반드시 동반된다"라고 말한다. "인생의 가치를 알려주지 않고 그저 재주만 가르치는 것은 의미가 없다"라며 그림을 공부하기에 앞서 삶을 철학하도록 애써온 그의 마음을 학생들도 잘 아는지 '평생 스승'이라며 지금도 최선길 작가에게 연락을 하는 제자들이 있다.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철학적 사유에 관해 수업 시간에 늘 이야기를 했어요. 아이들이 살면서 제 가르침에 대해서 좋게 생각해 주고 또 굉장히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고마울 따름이죠." 가르치는 일이 즐겁고 또 의미도 있었지만 예술고등학교에서 입시 미술을 가르치던 시기는 너무나 치열했다. "한 10년 가르치다 보니까 이것만 하다 보면 제 영혼이 고갈될 것 같고 지치더라고요." 대학 강의는 비교적 여유로웠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이 삶 자체인 그에게 여전히 작업에 몰입할 수 없는 환경은 스트레스였다.

 "물론 작업을 안 한건 아니지만 그때 저에게 '네가 작가니?' 물으면 대답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렇게 학생들이 진정 마음을 다하는 작가가 되길 바라던 그는 그 스스로 작품 활동에 집중하며 살기 위해 부론에 작업실을 짓게 되었다. 지난 40여 년 세월을 그림을 그려왔지만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작업을 하는 것 같다는 그는 "제 삶 자체가 오직 작업에만 집중되어 있으니까 이제는 스스로 '나는 화가다', '나는 작가다' 하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입장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상업 예술에 몸 담지 않고 전업 작가로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감당해야 할 것들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경제적 어려움. 많은 화가들이 경제적인 어려움 앞에 시장이 요구하는 '잘 팔리는 작업'을 하면서 결국 자신이 하고자 했던 예술이 아닌 곧 대체되어 버릴 값싼 작업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화단에서 저 같은 작가들이 살아가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다른 일 안 하고 작업에만 한 번 올인해 보자'하고 지금 버티고 있다"라고 말하는 그는 지금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자신의 영혼을 잃지 않고 작업을 지속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자신의 삶으로 살아내며 본보기가 되어 이 선택지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이고 싶다는 것.

 그가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된 이유는 오랜 시간 나무를 보고 관찰하고 그려 온 시간이 쌓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평생 한자리에서 세상 모든 것들을 위해 베풀며 살고 죽어서도 재가 되어 줄 만큼 모든 것을 다 내어주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도 나무같이 살아야 하거든요. 죽어서 그가 남긴 것들이 사람들에게 길이 기억되고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본보기가 되고 감동을 주는 그런 존재. 그런 인생은 나무의 생과 참 닮아 있어요."

 기술의 발전과 혁신으로 미술의 영역이 더 확장되고 다양하게 재탄생되고 있는 세상이다. 사진을 보고 그리는 것이 편리하기야 하겠지만 최선길 작가는 여전히 대상을 직접 마주하고 그림을 그린다. 반계리 은행나무와 교감하며 느끼는 수직적 시간, 즉 카이로스의 시간은 사진으로는 감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을 뜻하는 그리스어에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있다. 각각 우리가 살아가는 수평적 시간과 초월적이고 영원한 수직적 시간을 뜻한다.)

 최 작가는 "비록 고흐는 350년 전에 그림을 남기고 죽었지만 그림은 죽지 않고 여지껏 우리에게 영향을 주며 살아있잖아요. 이러한 '영원성'이 있기 때문에 예술이 가치가 있는 거죠."라며 자신도 그런 예술을 하고 싶기에 나무 앞에 앉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계리 은행나무뿐만 아니라 법천사지와 거돈사지, 그리고 흥원창을 품고 있는 부론 자체가 엄청난 시간성을 가진 장소라고 말한다. "부론에는 거대한 관광 명소를 만들 필요 없이 지금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유지해서 후손들에게 우리 선조들이 이렇게 멋진 장소를 남겨주었다는 것을 오래도록 알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쉴 새 없이 흘러가는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 영원하고 초월적인 카이로스의 시간을 느낄 수 있는 지역으로써 부론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거돈사지의 잔디밭에서 밤 하늘의 별을 찍고 잠시 앉아 명상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얼마나 세상이 시끄럽고 정신없이 돌아가고 또 공격적이에요. 그런데 그렇지 않은 몇 안 되는 장소인 부론의 가치를 많은 분들께 알릴 수 있는 일에 동참하고 싶어요."

 최 작가는 "외롭고 고독하고 힘들지만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한 세계를 추구하는 작가로서 살아간다면 언젠가 세월이 지나고 나서 어느 누군가가 제 가치를 알아줄 것이라 생각한다."라며 우리는 잠시 지나가는 여행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하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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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해 시민기자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