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초면에서 복숭아 농원을 운영하는 청년농부, 신승빈 씨

원주 최초로 대기업 납품

지난해 원주 농업계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원주에서 생산된 복숭아가 대기업에 납품됐기 때문. 지역 배추가 대상 종가집에 납품된 적은 있어도 과일이 대기업 제품의 원료로 쓰인 적은 처음이었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일을 해낸 사람이 28살의 청년 농부였다는 점. 덕분에 전국 편의점에서 쉽게 사 먹는 복숭아 에이드 제품은 치악산 복숭아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 일을 해낸 주인공은 신승빈(28) 씨다. 작은 체구에 가느다란 손가락, 누군가 툭 건드리기만 하면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배시시 웃을 것만 같은 청년이다. 그런데 복숭아를 돌보는 솜씨는 전문 농사꾼 못지않다. 소초면 2㏊(약 6천 평) 과수원에서 복숭아를 키우는데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을 능수능란하게 해내고 있다. 

지난 4일 소초에서 만난 신 씨의 모습도 베테랑 농업인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쓸모없는 가지는 솎아내고 평생 쓸 가지는 가지런히 가다듬는 모습이 전문가 뺨쳤던 것. 신 씨는 "8년 전 부모님 농사를 도와드리는데 너무 재밌어서 농사에 뛰어들었다"며 "나이 많은 부모님과 함께 있는 것이 좋았고 내가 일한 만큼 결과가 돌아오는 것 같아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청년 4-H 활동을 하면서 뜻밖의 행운을 만났다. 한국4-H중앙연합회에서 재무부장으로 활동할 당시 코리아세븐과 연을 맺게 된 것. 농촌진흥청과 코리아세븐이 '국내 육성품종 및 지역특화 농산물 유통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

이로 인해 신 씨가 키우는 복숭아 생과는 세븐일레븐 허니복숭아 에이드로 가공돼 전국 편의점에서 판매되고 있다. 그는 "상품 가치는 뛰어나지만 흠집이 난 복숭아를 세븐일레븐에 보냈다"며 "큰돈을 만진 것은 아니지만 전국에 치악산 복숭아를 알리는 효과가 상당했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인정할 정도로 고품질 복숭아 생산에 대한 열의가 뜨겁다. 복숭아나무가 양분을 고루 받도록 일 년 중 10개월을 농장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다. 고품질 복숭아를 생산하기 위해 전국 최고 복숭아 마이스터로부터 교육도 받았다.

이러한 열정 덕분인지 2019년 치악산 복숭아 품평회에선 대상을 차지했다. 신 씨는 "복숭아는 보통 11~12브릭스 정도 당도가 나오면 우수하다고 평한다"며 "13브릭스 이상 당도를 가진 복숭아를 직거래와 공판장에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자기 의지대로 농사가 안될 땐 가장 힘들다고 했다. 봄철 개화기 때 냉해를 입게 되거나, 복숭아 가격이 기대 이상으로 떨어지면 가끔씩 사기가 꺾인다고. 그래도 전국 최고 복숭아를 만들겠다는 집념은 늘 그대로다.

신 씨는 "전국 최고로 평가받는 조국행 복숭아 마이스터는 높은 가격에 복숭아를 판매한다"며 "일단 제가 키우는 복숭아 품질을 높여 조국행 마이스터처럼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한편, 그는 원주 농업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책 당국이 농업에 관심과 투자를 쏟지 않으면 원주는 미래가 어둡다는 것. 특히 청년들에게 끊임없는 투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신 씨는 "청년 농부들은 기반이 약해서 원주시가 기반을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며 "한 번 지원해 주고 마는 것이 아니라 10년 20년이 되어도 농업에서 떠나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