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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본 우리마을 ②부론면 법천리

'법천사(法泉寺)'가 마을 지명으로… 이동진 시민기자l승인202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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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천사지와 남한강을 끼고 있는 부론면 법천리 전경.

 하늘에서 보는 우리 마을은 어떤 모습일까? 
 원주투데이는 원주의 자연마을들을 드론으로 촬영해 각 마을들이 어떻게 형성돼 있는지를 살펴보고, 마을 이름에 담긴 역사적 유래와 마을 역사들을 소개한다.

 또한, 하늘에서 본 마을 영상을 유튜브 '원주투데이/원주방송' 채널을 통해 제공한다. 

 

 부론면 법천리 

 주로 농업에 종사하는 마을로 370세대 672명(2021년 기준)이 마을 남쪽에서 흘러들어와 북쪽 여주 쪽으로 흐르는 남한강을 끼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 중심을 흐르는 법천천은 봉림산에서 발원하는 공천천이 손곡저수지로 흘러들고 이내 법천천(法泉川)이 되어 동북쪽에서 법천사지 북서쪽을 휘돌아 마을 남쪽을 빠져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하천도 마을도 모두 법천사로부터 유래되고 있다. 법천사는 고려 중기의 대표적인 법상종(우주의 궁극적 실체는 오직 마음뿐으로 외계의 대상은 단지 마음이 나타난 결과라는 유식사상) 사찰로 원주 출신의 지광국사(智光國師)가 출가했고 활동이 끝나고 입적한 곳이다.

 이 절에 관하여 남아 있는 최초의 기록은 928년(경순왕 2년)으로, 신라 하대부터 이 지역의 대표적 사원이었다. 고려시대에는 무신정권 이전까지 법상종의 대표적인 사찰로 문벌 귀족의 후원을 받아 번성한 사찰로, 10세기에서 12세기까지 지광국사를 비롯하여 관용, 정현, 덕겸, 관오, 각관 등 유명한 승려가 계셨다. 조선시대에도 유방선이란 학자가 이곳에 머물며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한명회·서거정·권람 등이 그들이다.

 법천사는 허균의 기록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고 했다.

 법천리는 이처럼 중요한 불교사원이 있던 마을이기도 하지만, 강원도에서 가장 먼저 문명(文明)이 들어온 지역이기도 하다. 한성 백제시대 동진(東晉)의 양형청자(羊形靑瓷)가 부론 초교 옆 밭에서 발굴되었고, 이미 구석기시대 유물들이 남한강 변에서 여럿 발견된 적이 있어 남한강을 따라 내륙으로 들어온 우리 지역 선조들이 가장 먼저 정착했던 마을이기도 하다.

 법천리에는 고려시대 국사스님들이 계셨던 사찰로 수많은 인물이 드나들었고 조선시대에는 우담 정시한(丁時翰)과 해좌 정범조(丁範祖) 같은 학자가 거주했던 마을로 다산 정약용(丁若鏞)은 물론 큰 인물들이 드나들던 마을이다. 근래 회계고등학교(會計高等學校)가 개설되어 전국의 유능한 인재들이 모여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다. 

 백여 년이 넘도록 제자리를 떠나 있던 지광국사탑(智光國師塔)도 보존처리를 마치고 제자리로 곧 돌아오게 되면, 원주불교 사적의 중심지로 오랜 세월 불교문화의 중심지 마을 주민들의 자부심과 긍지가 더욱 견고해질 마을이다.
 

 ※이 콘텐츠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동진 시민기자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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