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에서 처음으로 ‘정치 현수막 우선 게시대’가 설치된다. 도시 미관을 해치는 불법 현수막을 양성화한다는 취지이지만 우선 게시대에 게시할 수 있는 현수막이 소수에 불과해 실효성 논란과 예산 낭비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원주시에 따르면 행정안전부에서 정치 현수막 우선 게시대 설치를 계획했으며, 강원도가 설치비용 2천만 원을 원주시에 교부했다. 이에 원주시는 단계동, 태장2동, 지정면, 무실동, 반곡동 등 5곳에 저단형(1∼2단) 현수막 게시대를 설치하기로 했다.

그러나 설치장소를 결정하는 일부터 난관을 겪고 있다. 원주시 관계자는 “주목률을 따지면 도심에 설치하는 게 효과적이지만 주요 지점에는 이미 현수막 게시대가 설치돼 있어 설치장소를 찾는 일부터 애를 먹고 있다”고 전했다.

주목률이 높으면서 현수막 게시대가 설치되지 않은 곳은 대부분 사유지여서 설치할 수 없다. 다행히 적당한 장소에 공공용지가 있더라도 현수막 게시대가 신설돼 인근 상가를 가리게 되면 민원이 발생하기 때문에 설치장소를 찾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수막 게시대 5곳에 게시할 수 있는 현수막이 14개에 불과한 점도 논란이다. 각 정당에서 눈독을 들일 게 뻔한 데다 지역 정치인만 해도 수십 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게시대는 제한적이어서다. 자칫 특혜·편향성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원주시가 지정 게시대가 아닌 곳에 건 정치 현수막을 철거하는 과정에서도 일부 정치인들로부터 편향됐다는 반발이 제기됐었다. 또한, 정치 현수막 우선 게시대는 정치 현수막을 우선 게시하지만 상업용 현수막도 걸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 현수막의 입지는 좁다.

현수막 정치는 어제오늘의 예기가 아니다. 오는 6월 1일 지방선거를 겨냥, 지난해 거리 곳곳에 현역 정치인과 예비후보자들의 현수막이 앞다퉈 게시되며 시각적 공해를 초래한다는 비판이 제기됐었다. 추석 연휴를 비롯해 경찰의 날, 소방의 날, 원주시 농업인의 날 등 기념일마다 거리가 정치 현수막으로 도배됐기 때문이었다.

정치 현수막이 적법한지, 불법인지에 대한 판단이 모호한 것도 문제다. 옥외광고물법에서 ‘단체나 개인이 적법한 정치 활동을 위한 행사 또는 집회 등에 사용하기 위해 표시·사용하는 경우’ 불법 현수막에서 제외하고 있어서다. 법 규정이 모호해 원주시는 민원이 접수되면 철거하는 등 소극적 대응에 그치고 있다.

지금은 예비후보자 선거사무소에만 현수막을 걸 수 있어 그나마 사정이 낫다. 하지만 내달 선거운동 기간에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지정 게시대가 아닌 곳에도 선거 후보자 현수막을 걸 수 있어 정치 현수막이 거리에 줄지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