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4월, 산수유와 개나리가 노란 꽃망울을 드러내더니 목련과 매화 그리고 진달래와 벚꽃까지 꽃잔치가 시작되었다. 겨우내 가물었던 대지엔 봄비가 흠뻑 내리더니, 따뜻해진 봄 햇살은 땅속에 있던 풀뿌리와 씨앗들을 깨우고, 틔운 새싹을 하루가 다르게 키워주는 봄이 왔다.

 봄꽃들의 개화기가 차이를 두고 피던 예전과 달리, 봄꽃이 한꺼번에 경쟁하듯 피는 것은 '기후 위기의 징조인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봄을 맞아, 시린 아픔을 견뎌온 사람들의 마음도 따뜻하게 녹여 줄 수 있는 계절이길 바라본다.

 K-방역으로 온 국민이 함께 견뎌온 '코로나 감염병'은 국민 3명 중에 1명이 코로나를 겪었고, 10주간의 증가세가 꺾이고, 3주째 확진자 감소세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이제 국가 단위의 관리망을 넘어서, 각 가정에서 자가 검진을 하고, 병원을 찾아 신속 항원 검사를 거쳐, 확진자가 처방약을 약국에서 직접 수령하게 되었다.

 또한, 거리 두기의 단계 조정과 함께 국제선 항공편의 증편이 결정되었고, 우리나라는 가장 빠르게 '엔데믹사회'로 전환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이제는 코로나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일상을 회복하고, 함께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되어간다.

 지난 3년간 전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교류를 제한하고, 일정의 주거공간 또는 일터에서의 최소한의 관계로 우리 모두를 고립된 개인들로 만들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마스크'에 '생명과 안전'을 의지해야만 했던 상황을 받아들이고 적응하고자 애써왔지만 여전히 불편하고 익숙지 않다. 

 코로나 시대에 태어나 가족들 외에는 마스크 벗은 사람들을 본 적이 없는 어린 아기들과, 한창 또래와의 상호작용으로 사회성 발달이 이루어질 나이에 마스크 쓰고 눈으로만 서로를 확인하며, 사회적 관계 맺기를 배워가는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더욱 안타깝다. 그래도 '이제는 어린이집이나 학교가 문을 또 닫지는 않을 거야'라는 생각은 '고립을 벗어나 선생님과 친구가 있는 곳으로 갈수 있다'는 희망이 되었다.

 인류가 당면한 실존적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구 종말 시계'(Doomsday clock)는 '3년 연속 100초 전'이라고 미국 핵과학자회(BAS)가 지난 1월 공개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이 주축이 돼 1945년 창설한 BAS는 지구 멸망 시간을 자정으로 설정하고, 핵 위협과 기후변화 위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1947년 이래 75년간 매년 발표해온 것이다.

 2019년 자정 2분 전으로 접근해, 코로나19 팬데믹이 온 2020년부터 3년째 자정 전 100초를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직도 우리에게 지구의 시간을 늦출 수 있다"라는 역설적인 희망이기도 하다.

 <나는 풍요로워졌고 지구는 달라졌다>의 저자 호프 대런은 과학자이며, 교사로 타임지의 '영향력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녀는 '지난 50년 동안 세계 인구는 두 배로 증가하고 식량 생산은 세 배로 증가했으며, 에너지 소비는 네 배가 됐다'고 말한다. 

 더 풍요로게 살고자 하는 인간의 이기심은 치킨과 아보카도를 먹기 위해 난개발로 열대우림을 파괴하였고, 난방과 자동차 이용으로 늘어난 화석 에너지의 사용량만큼 탄소가 배출되었고, 편리함으로 급속하게 늘어난 일회 용기를 비롯한 생활 쓰레기들은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우리가 누렸던 풍요와 편리함 만큼 지구의 시각은 급속히 종말을 향해 달려왔고, 우리는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그만큼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도, 기후 위기도, 얼마 남지 않은 지구의 시간도,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함께 풀어야 할 과제이다. 이제 고립된 개인을 넘어서 함께 공감하고 연대하며, 생활 속 실천에 사람들이 희망이라는 믿음으로, 지역사회 속에 함께하는 활동을 일구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웃을 만나고 서로 지지하며, 기후 위기를 함께 공부하고, 나로부터 시작하는 실천행동을 조직하고, 유기농 텃밭을 일구며, 마을 교육에 참여하는 우리들이 되고자 한다.

이현주 원주생협 이사장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