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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꽃을 보여주세요

몸통이 잘린 나뭇가지도 힘껏 꽃을 피우는 계절이다. 이 봄을 맞는 이들이시여, 당신의 꽃을 보여주세요. 양선희 시인l승인202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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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살펴보는 건 나뭇가지다. 그 나뭇가지는 얼마 전에 골목길에서 발견한 것이다. 아마도 어느 집에선가 정원을 손질하며 내다 버린 것이었을 테다.

 그 나뭇가지가 어떤 나무에서 잘라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잎도 꽃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골목 귀퉁이에 던져 놓은 나뭇가지들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나무의 싹이 터져 돋아나는 자리인 눈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훈풍이 불어오면 금세라도 자신만의 색깔을 세상에 내어놓을 태세였다.

 "아깝다. 고약병도 안 걸렸는데, 왜 잘라 버렸지?"

 나는 혼잣말을 하며 장갑을 벗고 나뭇가지에 손을 대어보았다. 모진 계절을 살아낸 나무의 인고(忍苦)가 느껴졌다. 봄에 꽃을 피우겠다는 일념으로 겨울을 견뎌냈을 그 나뭇가지들을 나는 차마 팽개쳐 둔 채 돌아설 수가 없었다. 

 나뭇가지들을 안고 집으로 왔다. 한 번 더 가서 끌어안고 왔다. 깨끗이 씻은 젓갈 독을 거실에 들여놓고, 길쭉한 나뭇가지들을 꽂았다. 
며칠 지난 아침이었다.

 "와, 초록별이다!"

 나뭇가지가 연두색 움을 틔운 걸 발견했을 때 내 입에서는 탄성이 절로 터졌다. 개나리꽃 모양을 한 넉 장의 잎. 마치 우주에 새로 탄생한 별 같았다.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 친구들과 공유했다. 그러고 가지 몇 개를 골라 최근에 원주의 한갓진 골목에 〈이서책방〉을 낸 이서화 시인에게 봄 선물로 주었다. 

 그 뒤 며칠 꽃을 시샘하는 바람이 사납게 불었다. 베란다 난간에 올려두었던 토분이 몇 개나 날아가 깨졌다. 정원의 나무들은 아직 꽃 피울 적기가 아니라는 듯 무심한 얼굴로 서 있었다. 어서 찬연한 봄을 보고 싶은데 말이다. 

 "어머나, 이건 또 뭐지?"

 일어나자마자 젓갈 독의 나뭇가지를 살피던 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른 돋보기를 찾아 들고 타원형의 잎새 사이를 보았다. 마치 어린 수수꽃 같은 것이 돋아나오고 있었다. 

 "라일락인가?"

 나는 인터넷에서 잎눈과 꽃눈을 찾아보았다. 나무마다 다른 잎눈과 꽃눈을 그린 어느 논문의 삽화에서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잎눈과 꽃눈은 각기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속에 들어 있을 잎과 꽃을 상상하는 재미가 컸다.
길에서 주운 나뭇가지 하나로 새로운 세계를 엿보며 또 며칠을 보냈다.

 "어머, 어머! 어머, 어머!"

 새벽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려던 나는 호들갑을 떨며 스마트폰부터 찾아들었다. 젓갈 독 앞에서 셔터를 눌러댔다. 초록색 잎새 사이에 하얀 꽃이 한 송이 피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향기를 맡아 보았다. 역시, 라일락, 흰 라일락이었다.
나는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이서화 시인에게 꽃 사진을 보냈다.

 "어머나, 신기해요. 우리도 꽃이 피겠네요. 버린 나뭇가지에도 꽃이 피다니, 신기해요."

 봄 덕담을 주고받으며 생각하니 곧 춘분이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추위와 더위가 같다는 날. 농가에서는 봄보리를 갈고, 춘경(春耕)을 시작하고, 들에서 봄나물을 캐다 먹는다는 날. 그 무엇보다 좋은 건 이제 빛이 지상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

 몸통이 잘린 나뭇가지도 힘껏 꽃을 피우는 계절이다. 이 봄을 맞는 이들이시여, 당신의 꽃을 보여주세요.


양선희 시인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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