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하고 아주 멀지 않은 옛날, 호랑이 담배 피는 시절은 못되고 양반은 좀 꾸짖던 시절, 성과급을 잘못 주었다가 나라가 망할 뻔한 일이 있었다. 조선 역사에서 선조 다음으로 무능한 왕(선조보다 무능하긴, 아아, 그건 정말 어렵다), 어질 인(仁)이 아니라 참을 인(忍)이 더 어울리는 왕 인조 때 일이다. 

 광해군은 북쪽의 신흥 강국, 청나라에 대해 실리외교를 펼쳤다. 그러자, '선비의 나라에서 재조지은을 잊고 오랑캐를 섬기냐'는, 듣기만 해도 현기증 나는 반발을 재위 내내 감내하던 끝에 살아서 왕위를 내려오게 된다. 이때 광해군을 끌어내리고 왕위를 차지한 이가 바로 이종, 인조다.

 왜 왕이 되려 했는지 이해하기 힘들 만큼 그냥 왕이기만 했던 인조는, 왕이 되자마자 왕권을 빼앗길 뻔 한 위기에 처한다. 조선시대 발생했던 반란 중 유일하게 왕을 몽진(몽진 전문 왕인 건 선조와 데칼코마니)시켰던 사건, 이괄의 난(1624) 때문이었다. 

 이괄은 인조의 반정공신이다. 광해군을 쫓아낼 때 인조와 한편이었다. 중요한 역할을 했다. 거사 당시 머뭇거리던 김류(이러면 다 죽어!)를 대신해서 군사를 지휘했고 반정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반정에 성공한 후에도 수도에 머무르면서 치안 유지를 담당했다. 쿠데타는 군권을 장악하느냐에 성공과 실패가 갈린다고 보면, 인조반정에 있어 이괄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쿠데타라는 살 떨리는 과정에 누구보다 앞장섰음에도 불구하고 이괄에게 성과급(?)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반정공신 2등에 오른 것이다. 이괄 입장에서 눈이 뒤집히는 건, 머뭇거리다가 거사를 망칠 뻔한 김류가 1등 공신이었던 것(이게 말이 돼?). 아, 이괄과 김류 사이에 '에리스의 사과'가 던져진 것이다.

 인조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인조반정 1년 후, 서북지역 병권을 쥐고 국경을 지켜야했던 이괄은 그 병력을 고스란히 빼내 한양으로 쳐들어왔다. 이괄의 기세에 공주까지 도망갔던 인조는 간신히 목숨을 건진 덕분에 왕위를 되찾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괄의 군대가 철수한 지역은 국방력 손실을 피할 수 없었고 정묘호란(1627) 당시 청나라 군대의 진격 루트가 되고 말았다. 인조가 이괄의 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굴욕을 당했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인조는 비록 부당하게 빼앗은 권력이라도, 온전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과급을 잘 주었어야 했다. 김류와 이괄의 다툼을 관리하지 못하고 한쪽 손을 들어주었다가, 본인 모양 빠진 것은 물론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고 말았다. 이로 인해 조선 역사 통틀어서 선조와 버금가는(결코 넘어서지는 못한다.) 비웃음 세례를 받아야했다.

 알면 알수록 한심하고 답답한 일이다. 과거나 현재나 누군가를 평가하고 판단하고 상을 주고 벌을 주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의 과정이다. 소수의 누군가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는 지났다. 모든 구성원이 납득할 만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그 과정을 공개하는 것이 "시대정신"임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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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리스의 사과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불화의 여신, 아프로디테, 헤라, 아테나가 모여 있는 곳에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적힌 사과를 투척하여 분란을 일으킴. 패리스가 아프로디테를 선택했고 여신 간의 다툼으로 트로이전쟁이 시작됨.

 

이승호 원주시청 공무원노조 대변인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