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지역농업네트워크협동조합)

설문 '이웃끼리 서로 잘 돕는다' …2017년 20.2%에서 2020년 16.7%
천사운동 참여 줄고 기부도 인색 …핵가족·고령화로 공동체성 약화

1972년 8월 19일,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 '베티'는 하루 강수량 308.3㎜(원주)를 기록할 정도로 큰 태풍이었다. 이로 인해 전국에서 550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원주에서도 주택과 농경지가 물에 잠겨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이 많았다. 

피해 복구를 위해 1973년 1월 천주교 원주교구는 재해대책사업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회를 중심으로 긴급 구호와 복구사업이 전개됐고 나중에는 지역개발 사업으로 성격이 확대됐다.

결과적으로 보면 남한강 대홍수는 원주를 중심으로 신용협동조합, 소비자협동조합 운동이 도내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단초가 됐다. 상호부조의 공동체 정신이 위기 극복을 넘어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촉매제가 된 것이다.

2019년 말 발생한 코로나 팬데믹은 근 2년 동안 원주 지역사회의 위기로 작동했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폐업이 줄을 이었고 수많은 실직자(11면 실업률 기사 참조)가 발생했다. 과거 남한강 대홍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커다란 피해를 안겼다. 그런데 지금의 원주 지역사회는 1973년 수해 복구 때처럼 한마음으로 코로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최근에 실시된 공동체 의식 조사를 보면 그렇지 않아 보인다. 2017년 원주시 사회조사에서 시민들은 '서로 잘 돕는다'라는 문항에 20.2%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그런데 2020년 조사에선 16.7%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지역 사람들과 잘 알고 지내는 편이다'를 묻는 항목에서도 2017년엔 27.8%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2020년엔 그 비율이 24.1%로 떨어졌다.

이러한 현상은 설문 결과뿐만 아니라 실제 사회현상에서도 발현되고 있다. 시민 한 명이 매월 1천4원씩 모금하는 천사운동은 2011년에 2만8천379명이 참여했다. 그런데 지난해는 6천922명에 그쳐 10년 사이 4분의 1로 축소됐다. 연간모금액도 2017년 1억7천712만 원에서 지난해는 1억4천만 원으로 내려앉았다. 

천사운동뿐만 아니라 지난해 연탄은행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었다. 밥상공동체종합사회복지관은 지난해 말 30만 장의 연탄을 에너지 취약계층에 전달하려 했다. 그러나 기부 연탄이 10만 장에 불과해 어려움을 겪었다.

연탄 기부 감소는 원자잿값 상승과 코로나19에 의한 경제 침체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하지만 후원 손길이 갈수록 줄어드는 작금의 사회 분위기도 한몫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공동체성 약화, 인구 문제에서 초래
공동체 의식이 약화하는 것은 인구 문제로부터 기인된 것으로 보인다. 원주가 갈수록 고령화되고 있고 1인 가구도 증가하기 때문. 도시가 활력을 잃고 개인화되니 지역사회 공통 이슈에 관심을 두는 시민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원주시 인구 변화를 보아도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020년 말 원주시 인구는 35만7천710명이었다. 2015년 33만6천31명과 비교해 무려 2만1천679명이 늘어났다. 이 같은 인구 증대는 혁신도시와 기업도시의 인구 유입이 한몫했다. 최근 10년 사이 혁신·기업도시가 활성화되면서 원주 전체의 생산가능인구 11%나 증가했다.

하지만 이 못지않게 고령화 비율도 급격히 늘어났다. 총인구 중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인 고령화율은 2011년에 11.3%였다. 그런데 2020년엔 15.2%까지 치솟았다. 전체인구에서 노년층 비율이 14% 이상이면 '고령사회'(Aged Society)라 부르는데 원주는 2019년(14.3%)에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해 있었다.

농촌과 일부 동(洞) 지역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지역농업네트워크협동조합이 한국고용정보원과 행정안전부 통계를 토대로 지방소멸지수를 측정한 결과 이같이 나타난 것.

조사 결과 지난해 부론면(0.099)과 신림면(0.109), 귀래면(0.123), 호저면(0.171), 중앙동(0.183)은 '소멸 고위험 지역'에 포함됐다. 지방소멸지수는 20~39세 여성인구를 65세 이상 고령인구로 나눈 값인데 통상 1.0 이하면 인구 쇠퇴 위험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본다. 

소초면 한 주민은 "모내기 철이면 이웃끼리 밭도 갈고 물도 데어주곤 했는데 지금은 노인들밖에 없어 농사 자체가 힘든 지경"이라며 "사람 자체가 없고 그나마 있는 사람들도 다 노인이어서 마을 일을 도모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게다가 원주시 1인 가구(2020년 4만6천208호)는 강원도 전체 1인 가구의 22.1%를 차지할 정도로 많다. 인구는 점점 늙어가고 가족은 핵분열돼 원주 시민으로서 느끼는 동질감이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어 보인다. 과거 남한강 대홍수 위기를 상호부조로 해결했던 원주 시민들이 현재의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최다니엘 기자  nice4s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