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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초 심종보 작가

"척박한 땅의 나무가 더 아름다워" 전통 서각·장승 명인…솟대와 장승 디자인 특허 황진영 시민기자l승인2022.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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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업면 매지리, 볕 좋고 한갓진 마을 언덕 중턱에 심종보 작가의 작업실인 '초은산방'이 있다. 일단 안으로 들어서면 사방 벽면을 가득 채운 장승의 기세에 주춤하게 된다. 액운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밤낮 지키는 게 본분인지라, 눈을 홉뜬 장승의 얼굴이 괜스레 섬찟하다.

 그런데 어쩐지 자꾸 들여다볼수록 무섭기보단 익살스럽게 느껴진다. 장승 곁에는 아름다운 경구가 새겨진 서각 작품들 또한 여러 점 걸려있다. 곳곳에 애처로운 자태의 솟대도 눈길을 끈다. 가지각색 저마다 다른 매력을 뽐내지만 나무로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심종보 명인은 시골 태생이다. 그는 "아마 도시에서 자랐으면 나무를 접할 기회가 없었을 거예요. 매일 산에서 놀았으니 나무가 친구나 다름없었다"며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그가 장승을 조각하게 된 건, 혈기왕성한 이십 대 무렵 우연히 나선 산행에서 오래된 장승 한 쌍과 마주치면서부터였다. 장승을 흔히 보아왔지만 그날의 감동은 각별했다. 심 명인은 "긴 세월 비바람에 삭을 대로 삭아 윤곽마저 흐릿해졌어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느껴졌죠"라고 말했다.  

 전통예술을 계승하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는 심 명인도 한때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원주에 정착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심 명인은 "서울에서 8년 정도 직장생활을 했어요. 그 세월이 마치 80년처럼 느껴질 만큼 괴로웠습니다.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요"라고 답했다. 결국 평생 나무를 만지며 살기로 결심하고 지인들이 있는 원주로 내려온 뒤 심 명인의 일상은 크게 바뀌었다. 매일 무겁게만 느껴지던 몸도 날아갈듯 가벼워졌다.  

 심 명인은 창작과 관련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그는 학교에 가는 대신, 장승과 관련된 책이라면 빠트리지 않고 모두 읽었다. 그리고 이름난 장승명인이 있는 곳이라면 산간벽지를 막론하고 무조건 달려갔다. 치열한 연구와 모각을 거듭하며 심 명인은 점차 창작의 지평을 넓혀나갔다. 꾸준한 노력의 결과로 그는 전통 서각(제G13-04-12-41호)과 장승(제R14-04-18-14호) 명인으로 등록되는 한편, 솟대와 장승 디자인 특허를 내며 명실상부 장인의 반열에 올랐다.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제는 전국 각지에서 많은 이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 초은산방으로 찾아든다.      

 심 명인에게 나무는 여전히 전율의 대상이다. 작업을 위해 그는 1천m가 넘는 고지에 직접 올라 재료를 구하곤 한다. 주로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것을 선호하는데, 그 중 '관솔'이 제일이다. 가지나 그루터기에 송진이 엉긴 소나무를 '관솔'이라 한다. 주로 바람에 꺾여 고사된 나무들이고 모양이 울퉁불퉁 제멋대로인 경우가 많다. 심 명인은 바로 여기서 장승의 형상을 찾아낸다.

 심 명인은 "편안하게 자란 것들은 다루기가 쉬워요. 반면에 힘들게 자란 나무는 다루기는 어렵지만 나이테라든가 색감이 정말 멋집니다"라며 설명을 덧붙였다. 나무를 공방으로 가져와 현장에서 발견했던 장승의 형상을 다시금 탐구하며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심 명인이 추구하는 바는 명확하다. 이리저리 휘어진 나무를 통해 우리 민족 특유의 해학을 표현하고자 한다.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재미가 있어요"라는 심 명인의 말을 증명하듯, 널찍한 작업공간을 빼곡히 차지한 장승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장승을 다 깎은 뒤에도 작업은 끝나지 않는다. 몇 년씩 바깥에서 비바람을 견디도록 둔 후에야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 이를테면 자연과의 합작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장승은 심 명인에게 신체의 일부와도 같다. 그래서 작품이 판매가 되더라도 기쁨보단 슬픔이 더 크다. "자식 같은 존재죠. 장승마다 제 실핏줄이 연결돼있다고나 할까요." 장승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더할 나위 없는 애정이 묻어났다. 

 그의 전성기는 다름 아닌 지금이다. "저도 젊어서는 무척 어려웠어요. 주변에서 인정도 좀처럼 해주지 않았고요. 저 뿐만 아니라 대부분 그래요. 5,60대가 되어서야 정점에 이르게 됩니다. 나이가 들고 나서야 어떤 경지에 이르는 거죠." 심 명인에게 예술은 많은 사람과 공감하며 소통하는 것이다. 아무리 일정이 빠듯해도 한 해에 다섯 번 정도는 전시를 연다. 전시장에 오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또 다른 무언가를 배우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심 명인은 "전시는 제가 살아있다는 증거예요. 제가 움직일 수 있는 한, 이 세계에서 살 거니까요.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할 거예요. 이 길이 제 길이니까요"라고 말하며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백발이 성성한 그에게서 오래 전 초야에 파묻힌 장승을 발견하고 환희에 찼던, 이십대 청년의 기백이 엿보였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황진영 시민기자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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