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를 협동조합의 도시라고 많이들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신용협동조합, 소비자협동조합 운동, 한살림공동체운동 등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의 삶과 생존을 위한 문제 해결을 협동의 방법으로 어느 지역보다 먼저 그리고 오랫동안 진행해왔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사람 중심의 경제가 필요함을 깨닫고 광부와 농부와 빈민과 노동자와 함께한 대장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에서 출간한 대장부라는 책에는 이렇게 어려운 이웃의 삶의 문제를 경청하며 그들의 자립을 돕는 활동을 전개한 대장부(김영주, 이경국, 김상범)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중에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라'의 주인공인 이경국 어르신은 본 조합의 이사로서 50년의 협동조합 경험을 전수해 주고 계신다. 

 일반적으로 대장부의 뜻은 건강하고 씩씩한 사나이, 남자 중의 남자 등으로 뜻풀이가 되고 있으나, 책에서는 '대장부는 중후함에 처하지, 얄팍한 곳에 거하지 아니한다고 하면서, 대장부는 내가 이런 좋은 일을 했는데 남이 안 알아줘도 상관없다….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푼다는 얘기야.'라고 무위당의 어록을 인용하여 새롭게 제시한다. 

 그렇다면, 5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시대의 대장부는 필요할 것인가? 당연히 필요하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돈과 권력과 정치, 노동 등에서 주변화되어 삶과 생존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이 있다. 50년 전 돈이 없어 고리 사채를 써야만 했던 시대에서 지금은 돈이 넘쳐나는 시대로 변했지만, 여전히 그 돈은 사람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거나 자립시켜주는 돈의 기능을 잘하지 못한다.

 변화된 시대의 대장부는 돈의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해결을 개인 대장부가 아닌, 협동조합이라는 조직된 대장부로서 시스템적인 접근을 해야 할 것이다. 갈거리은행이 그런 역할을 할 것이다.

 갈거리은행은 돈 중심 금융기관이 아니다. 법적으로도 금융사업을 할 수 있는 조건도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하는 은행인가? 돈과 사람 중에서 사람을 중심에 놓고 그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돈의 기능을 새롭게 조직하는 은행이다. 갈거리은행은 이번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나눔과 꿈 사업에 선정되어 3년 동안 새로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는데, 그 중심 주제가 '갈거리은행'이다. 

 자본주의 교환가치로서의 돈의 효용성을 인정하면서도 돈으로 다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를 통합돌봄 형태로 접근하여 우리 개인들의 삶을 자립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돈에 대한 사적 소유와 개인의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갈거리은행을 통해서 공동체적으로 관리되어 적은 돈일지라도 아끼고 저축하여 나의 생활에 맞는 가계 재무관리를 통해 삶의 변화를 작게 작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초생활수급비 중 한 달에 만 원씩 모아 일 년 후에는 나를 위해 여행을 갈 때 갈거리은행에서 이를 위한 매칭 자금을 형성하여 저축의 동기부여도 인정하면서 실제적인 사용처의 합리성도 꾀하는 것이다. 지난 성장 담론의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돈에 대해 너무나도 쉽게 안이하게 생각해 왔다. 이제는 허욕과 낭비로서의 돈이 아닌, 나의 삶을 행복하게 하며, 공동체에서 돈의 가치가 호혜적으로 사용되게 해야 할 것이다. 

 기부나 후원에 대한 인식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지역 공동체 활동(협동조합이나 새로운 복지운동 등)이 돈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필요할 것인데, 이번 갈거리은행이 그런 역할을 할 것이다. 새로운 도전은 늘 무지갯빛 낭만만이 있을 수는 없다.

 예측하지 못한 많은 변수가 있을 것이다. 갈거리은행의 이번 도전은 새로운 지역복지운동의 주체로서 사회적협동조합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50년 전 어르신들이 대장부로 사는 삶을 살아온 것처럼, 우리 조합도 그렇게 조용히 대장부의 정신을 담은 지역의 공동체로서 자리매김하고 싶다.

박준영 갈거리사회적협동조합 상임이사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