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은 개별적이거나 집단적으로 축적한 지식 정보를 시·공간적 한계를 초월하여 어떤 형태로든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는 역사적 존재다. 역사는 한 무대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이야기다. 따라서 인간 삶의 조건인 역사적 공간이 인간을 키워내는 토대가 되고 환경이 되는 것이다. 역사적 공간이 소멸한 곳에서 우리가 '문화의 죽음'을 살피게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세계의 많은 도시는 지역 내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하여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업을 통해 지역의 전통문화에 대한 역사적 정체성과 얼을 고양하는 동시에, 도시관광의 경쟁력을 키우는 지표로도 활용되어, 그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며칠 전 신문에서 한 정치인이 임윤지당(任允摯堂) 생가를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기사를 봤다.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다. 그리고 원주를 상징해 온 강원감영 선화당(宣化堂)도 국가 보물로 승격되었다. 또한,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사라진 '칠봉서원(七峯書院)'의 복원도 곧 완성된다고 한다. 선화당의 보물 승격은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어쩐지 도시는 조용하기만 하다. 

 세계 관광시장에서 지방정부가 국가를 대신해 전 세계 방문객을 대상으로 경쟁해야 하는 흐름 속에 지역의 역사문화자원의 가치와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으며, 따라서 자치단체의 문화경쟁력은 국가발전의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선화당의 보물 승격 기쁨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아쉬움이 내 혼자만의 것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원주를 오랜 세월 동안 강원도의 수부 도시의 역할을 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강원감영을 빼고 나면 도시 공간 어디에도 그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기록들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어 안타깝다. 전쟁을 겪은 상처가 역사 도시라는 이미지마저 빼앗아 간 것이다.

 칠봉서원이 복원되고 장차 임윤지당 생가를 복원하겠다는 소식에 원주의 도시경쟁력을 살려 나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막연하지만 몇 가지 의견을 얹고 싶다. 먼저, 감영의 선화당과 함께 중심건물이었던 객사(客舍) "학성관(鶴城館 )"과 그 주변 관아 건물의 복원이 그립다. 관찰사로 부임해 강원도민의 형편을 살폈을 500여 분의 관찰사! 그 가운데 특히, 청백리의 표상과도 같은 황희(黃喜), 관동별곡을 지은 정철(鄭澈), 퇴계와 남명을 잇는 성리학자였던 정구(鄭逑) 같은 분들의 흔적이 역력하니,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표상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관아 동북쪽 300 무(畝) 남짓에 있었다고 하는 '무학당(武學堂)'은 여섯 고을의 무관들이 사용하던 곳으로 요즘 청소년들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흡입하는 공간이 되어도 좋을 것 같다. 단구역(단구동 북부산림청)과 주변의 협선루 등 누각과 정자들, 그리고 월은정(月隱亭), 집승당(集勝堂), 구석정(龜石亭), 입춘단(立春壇), 취병정(翠屛亭), 인열왕후비각(仁烈王后碑閣) 등 기록으로만 남아있는 문화자원들이 부지기수다. 한 해 하나씩 재정에 부담되지 않게 도시 공간을 복원시켜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 원주가 역사문화도시의 공간적 면모를 갖추게 될 것이다. 

 원주는 창의문화도시다. 이곳에서 문화도시에 사는 시민의 정체성과 시민의식 함양을 위한 의제 연구 등을 통해 실천적 과제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 기대가 크다. 그러나 정신문화 못지않게 소멸한 우리의 유형문화유산(有形文化遺産)들이 도시 공간 곳곳에 제자리를 찾아 복원된다면, 원주의 역사문화 중심도시로서의 외형적 면모를 갖추게 될 것이며, 이것이 도시의 정체성이자 문화적 가치로서 도시의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다. 

 선화당 보물 지정에 이어 칠봉서원의 복원이 이뤄지고, 임윤지당 생가 복원구상 등 반가운 소식 앞에 호들갑스러운 면이 없지는 않지만, 그 기대마저 접을 수 없어 짧은 생각을 펼쳐보았다. 호시우보(虎視牛步)의 자세로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이동진 평원문학연구소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