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은 20대 대통령 선거와 제8회 지방선거가 잇따라 치러지는 해이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은 민주주의의 꽃이 활짝 피어나야 하는 해인데 정말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일까?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이미 250년 전에 영국의 대의민주주의를 두고 "국민은 투표 할 때만 자유롭다. 의원이 선출되면 국민은 다시 노예로 전락한다"고 비판했다.

 투표가 끝나고 난 뒤에 평범한 시민들이 대표자들을 통제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각 당의 대선후보가 확정되고 난 후 유례없이 오차범위 내의 박빙의 승부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후보들은 연일 이곳저곳을 누비며 국민들을 만나고 각종 정책들을 쏟아내며 국민의 마음을 사기에 경황이 없지만, 직접 후보로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평범한 시민들이 선거 시기가 끝나고 나서 권력자를 제어하는 힘을 갖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 않은가.

 1987년 이후 한국 사회는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민주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나?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거로 뽑을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돼 내가 사는 동네의 도지사, 시장은 물론 시·도의원도 직접 선거로 뽑고, 주민발의, 주민투표, 주민소환제도들도 지방정부 차원에서 도입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일상 속에서 민주주의를 느끼고 경험하지 못하는 걸까?

 일제 강점기 죽음을 무릅쓰고 독립 운동을 하는 것이 민주주의이고 엄혹한 군부독재 살인정권에 돌맹이와 화염병으로 맞서 싸우는 것이 민주주의이고 부패하고 불의한 정권에 촛불로 맞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외치는 것이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였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면 우리 사회가 바뀌고 민주주의가 실현돼 모두가 행복한 나라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광장에서 물러나 집으로 회사로 돌아 오는 순간 민주주의는 꺼진 촛불처럼 생명력을 잃었다. 광장에서의 권력은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호박으로 바뀐 마차가 돼 버렸다. 권력은 그들만의 것이 돼 버렸고,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던 목소리가 집에서 가정폭력을 일삼고, 회사에선 갑질 상사로 군림하고, 단체는 관료적이고 권위적이다.

 광장 민주주의와 일상의 민주주의가 같아야 한다. 광장은 뭉친 시민의 힘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광장의 힘이 시민의 일상에서도 발휘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적으로 대표자를 선출하고 정치인을 바꾼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선출된 소수가 다수의 민의를 왜곡하고 독점적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우리는 지난 경험을 통해 배우고 있다.

 이제 광장에서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외쳤듯 선거로 대표자를 선출하는 것만이 아닌 일상적으로 시민이 주인 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당사자인 시민 누구나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드러내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책임을 질수 있을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사회이다. 

 예전에는 부패한 권력과 싸우는 것을 민주주의로 여겼다면 이제는 정치·경제를 넘어 내가 몸 담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와 직장, 가정, 공공기관의 부조리를 어떻게 바꿀지 고민하고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일상의 민주주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누구도 소외됨 없이 동등하게 존중받고,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여 내가 가진 권한은 나누고 서로의 다른 점은 인정하고 포용하며 토론과 조정을 통해 협력해서 만들어 가는 시도 속에 민주주의는 생명력을 갖고 시민의 힘은 커지게 되는 법이다.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나의 변화로부터 세상의 변화가 가능하다면 그리고 간절히 세상의 변화를 원한다면 나는 민주적 시민성을 갖춘 시민인가? 성찰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하자.

용정순 (전)원주시의원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