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감영 내에 있는 관찰사 및 목사들의 선정비. 일 년마다 바뀌는 관찰사를 위한 선정비가 관행으로 굳어지면서 고을 백성들은 고스란히 그 부담을 떠안아야 했다.

지금까지 강원감영을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있었다. 포정루, 중삼문, 내삼문을 거쳐 선화당과 주변 건물, 선화당 뒤편 후원 공간을 옛날 모습과 건축 양식을 되살려 복원했다. 지역 축제를 통해 관찰사 부임 행렬을 되살렸고, 관찰사 밥상을 개발 보급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이와 같은 노력은 조선시대 감영 건축물과 관찰사의 행적 복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진행되었다.

건축 양식과 관찰사들의 행적 말고도 강원감영에는 수많은 사람의 삶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강원감영이 유지된 500년 동안 강원도 관찰사로 근무했던 사람은 512명이었다. 관찰사 한 명이 1년 남짓 근무한 것이다. 이 짧은 기간 동안 강원도 곳곳의 사정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을까? 전임 관찰사가 남긴 자료나 관찰사를 수행하는 도사 등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못한 상황에서 관찰사가 강원도 백성들의 삶을 이해하고 목민관으로서 백성들을 위한 선정을 베풀었을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강원감영에 가면 많은 선정비가 있다. 관찰사나 지방관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들이다.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원주 곳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모아놓은 것이다. 선정비는 누가 세울까? 관찰사나 목사의 임기가 끝날 무렵 백성들에게 비용을 거두어서 선정비를 세웠다. 백성을 위해 헌신했던 목민관을 기리는 선정비도 없지는 않았지만, 임기 마치는 목민관을 위한 예우 차원에서 선정비를 세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심지어는 백성들을 수탈했던 목민관들의 선정비까지도 버젓이 세워졌다.

관행이 된 선정비, 고을 주민 부담 떠안아
원성의 대상 공격받아 동강난 채 뒹굴기도

▲ 포정루와 함께 강원도유형문화재 3호인 강원감영 선화당(宣化堂). 관찰사가 정무를 보던 정청 건물로 강원감영이 유지된 500년 동안 512명이 강원도 관찰사로 근무했다.

일 년마다 바뀌는 관찰사를 위한 선정비가 관행으로 굳어지면 고을 백성들은 고스란히 그 부담을 떠안아야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선정비를 바라보는 백성들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선정비 곁을 지나갈 때마다 속도 상하고 울화통이 치밀기도 했다. 치미는 울화통을 해소할 길이 없었던 이들 중에는 남몰래 선정비에 돌도 던지고 걷어차기도 했다. 선정비에 새겨진 이름을 돌로 쪼아내기도 했고, 민중항쟁의 불길이 타오르던 시기에는 원성의 대상이 되었던 선정비가 민중들의 공격을 받아 동강 난 채 나뒹굴기도 했다.

전통 놀이 중에 비석치기가 있다. 편을 나누어 선을 그어놓고 일정한 간격으로 비석(돌)을 세워놓고 돌로 상대편의 비석을 맞추어 쓰러뜨리는 놀이이다. 돌로 비석을 공격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손으로 던지거나, 양발 사이에 돌을 끼우고 깡충깡충 뛰어가서 맞추거나, 배, 가슴, 어깨 등에 돌을 올려놓고 떨어뜨리지 않고 걸어가서 맞추어 쓰러뜨리는 놀이다. 비석이 많이 세워진 비석거리에서 시작되었다는 비석치기 놀이에는 선정비를 향한 백성들의 민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강원감영 영내에 줄지어 늘어선 선정비에는 어떤 사연들이 담겨 있을까. 비문 글자가 훼손되거나 동강 난 비석은 없을까. 찬찬히 둘러보면서 선정비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갖가지 사연들을 스토리로 재구성해보는 건 어떨까. 선정비가 늘어선 공간 앞에서 비석치기 놀이 한마당을 펼쳐보면서 관찰사가 아닌 백성의 시선으로 강원감영을 바라보는 것도 괜찮지 아니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