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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당 탄신 300년 되는 해이거늘

탄신 300년을 맞이하는 올해 윤지당의 학문적 성과와 삶을 소개하는 일이 하나쯤 있었더라면…윤지당선양관과 원주얼교육관은 시민들이 지녀야 할 정체성과 역사적 긍지를 퍼 올리는 샘물과 같다 이동진 평원문학연구소l승인2021.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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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여성가족공원에 있는 '윤지당선양관'을 찾았다. 후끈 올라오던 길 위의 열기가 가라앉고 녹색 가로수는 가을의 화려한 변신을 준비하듯 조용하다. 마당에 서 있는 윤지당의 비검명(匕劍銘)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윤지당의 강철같은 의지가 느껴져 발걸음이 저절로 멈춰 서게 된다. 아침 햇살이 기와지붕 아래로 비스듬히 비치는 선양관 대문은 활짝 열려있다. 그 옆으로 이번 여름에도 '코로나19'로 제 실력을 한껏 뽐내지 못했을 물놀이 시설이 햇살에 괜히 의연하다.

 안으로 들어서 윤지당 영정 앞에 선다. 녹록지 않은 시대 환경 앞에 학구적 에너지를 쏟아냄에 있어 전후좌우 눈치 보지 않았고, 그래서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의지로 살아온 삶을 후세 사람들이 귀감으로 삼고 있다.

 올해는 그런 윤지당이 태어난 지 300년 되는 해다. 재작년 두어 군데 단체에서 윤지당에 대한 소개 요청이 있어 그의 삶을 살펴 소개하기를 "문질빈빈(文質彬彬)"을 이룬 분이라 했었다.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성리학적 명제를 품고, 그것을 이루려 평생을 비검명(銘)을 지어 걸어두고 자신을 채찍해 나간 삶이 빛나는 분으로 봤기 때문이다. 

 지난여름의 무더위는 '코로나19'로 쌓인 마음 스트레스까지 더해져 견디기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때 눈에 들어와 읽은 윤지당의 글이 하나 있다. 한여름 윤지당의 둘째 오빠(녹문 임성주)가 양근 군수로 재직 시 그곳에 찾아가 머물면서, 매일 문안 인사를 오는 친정 조카들에게 "오늘 공부는 어떠하냐?"라고 물으니 "날이 더워 고통을 견딜 수 없습니다." 이렇게 답한 조카들을 향해 꾸짖었다.

 "책을 읽는 데에 마음을 쏟으면 가슴속에 자연히 서늘한 기운이 생긴다. 어찌 부채질을 하겠느냐? 너희들은 아직 헛된 글자공부에서 면치 못했구나."(潛心讀書, 膈間自然生凉, 安用扇爲 汝輩未免讀書矣.『允摯堂遺稿』「遺事」) 그냥 들으면 윤지당의 이 말은 전혀 현실감 없이 느껴지지만, 윤지당 본인은 어땠을까?

 조선의 존경받는 남성 유학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고, 언행을 함께 중시하는 성리학자인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면, 실제로 그와 같은 신념과 행실을 지켜나갔을 것이다. 존심양성(存心養性)한 수양의 경지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더위를 이길 만큼 마음을 쏟아 책을 읽은 경험이 없으니 그 경지가 더 무겁게 다가왔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평생을 이러한 자세로 산 윤지당의 삶을 소개하는 미사여구가 넘친다. 마음에 와닿는 글 몇 개를 소개하면, "쓰일 곳 없는 공부, 그래서 순수하고 깊은 공부를 한 조선 후기 여성 지식인", "자연과 인간의 이치를 탐구하는 보편지식의 세계에 도전하여 보고서를 남긴 삶의 성리학자", "사대부 남성들이 독점한 지식 세계에 도전하다.

 남녀의 본성에 어떤 차이가 있단 말이냐!", "여성의 눈으로 시대를 교정하며 성리학의 사유전통을 따라 자신의 인간적 완성을 실현해 보인 여성 철학자" 등이다. 이 밖에도 무수히 많았다. 선뜻 이해하기 힘든 소개도 보이는데. "규방의 삶을 벗어던진 조선 최고의 여성 성리학자", "여자도 사람임을 철학적으로 증명하다." 등이다. 

 처음 윤지당 유고를 국역한 이영춘 교수는 "성인과 범인(凡人)이 같은 성품을 타고나고, 남성과 여성은 현실에 처한 처지만이 차이가 날 뿐, 하늘에서 부여받은 성품에는 애초에 차이가 없다."라는 것은 성리학적 논리고 당시 학자들의 기본인식이지 특별한 논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이를 "여성 스스로 자각하고 드러낸 사람이 원주의 윤지당"이라고 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일부 윤지당의 삶을 왜곡하거나 잘못 이해하고 얘기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우리 고장의 자랑스러운 분이니 스스로 더 잘 알고 이해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윤지당 선양관을 다녀오며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한국 지성사에 드문 여성 인물을 위해 지어진 선양관이 시민들이나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잘 활용되고 있지만, 탄신 300년을 맞이하는 올해 윤지당의 학문적 성과와 삶을 소개하는 일이 하나쯤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다. 한국 최초의 철학도서관인 '중천철학도서관'이 있고, 조선 최초의 여성 성리학자의 삶이 있는 원주여서다. 

 좀 더 내용을 확장해도 좋을 것 같다. 2000년대 중반 중천 김충열 박사가 치악예술관에서 처음 대중강연으로 시민을 만났을 때, 조선 성리학의 6대 대가인 녹문 임성주(任聖周, 1711~1788)는 임윤지당의 둘째 오빠가 되고, 말년에 원주 섬강 가까이 5년여 동안 산 역사가 있다. 원주에서 동생 임정주와 함께 세분을 원주 인물로 충분히 다뤄도 좋지 않으냐고 했던 기억이 있다. 조선 유학사에서는 이들 3남매를 "녹문학파(鹿門學派)"로 분류하고 있다. 

 윤지당선양관 그리고 원주얼교육관은 시민들이 지녀야 할 정체성과 역사적 긍지를 퍼 올리는 샘물과 같은 시설이다. 지어놓는 것에 멈추지 않고 그 취지가 잘 펼쳐질 수 있도록 세심한 기획과 투자가 기대된다.


이동진 평원문학연구소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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