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 우리나라의 결혼이주 역사가 30여년을 넘어서고 있다. 전국적으로 결혼이주여성은 13만7천878명까지 증가했고 그 1세대가 60대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원주시의 경우 결혼이주여성은 약 1천300여명으로 원주여성인구의 약 0.8%를 차지할 정도이니 인구학 측면에서 간과할 수 있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이주여성들의 안전 문제는 여전히 사각지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가정폭력, 성폭력, 그리고 국적 취득을 빌미로 폭력과 착취에 노출되는 사건들은 30년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반복되는 사회문제이다. 국가인권위원회(2017)의 「결혼이주민의 안정적 체류보장을 위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동안 결혼이주여성의 폭력상담건수 중 가정폭력은 1만2천997건이었다.

 부부갈등(1만6천927건)과 가족갈등(3천986건)을 포함하면 결혼이주여성들의 심리적, 사회적 안전 문제는 사회가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대처해야할 문제이다.

 결혼이주여성의 사회경제적 참여를 확대하고 사회적 다문화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정책적 고민과 시도가 점차 강조되고 있지만 오랫동안 한국문화에 동화(同化)와 적응을 전제했던 다문화 정책은 정작 결혼이주여성에게 안전을 보장하는 환경과 역량강화의 기회를 제공하지 못했다. 

 지역사회에 누가, 어떤 기관이 자신을 도울 수 있는지, 어떻게 도움을 요청해야하는지, 이에 대한 정보나 경험이 부족하고 언어적으로 소통이 어려운 결혼이주여성은 자신이 처한 폭력적인 상황을 결코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무기력감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는 한국인 배우자가 한국 땅에서 유일하게 자신과 연결된 대상인만큼, 이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절망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들은 적극적으로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지도, 도움을 제공하는 사람의 손을 잡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고립된다는 것은 이렇게  자신의 안전을 독립적으로 보호하고 옹호할 수 있는 주체적인 역할과 권리로부터 개인을 취약하고 무기력하게 한다.

 분명한 건, 더 이상 결혼이주여성들이 폭력에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폭력으로 인해 무기력해진 이들을 안전의 사각지대에 그대로 방치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결혼이주여성들의 언어적 한계와 문화적 상이성이 사회적으로 도움을 받는데 장애물이 되어서도 안 된다.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느냐, 왜 신고하지 않느냐, 왜 적극적으로 탈출하지 않느냐는 질문은, 그들에게 너무 무겁고 괴로운 비난과도 같다. 그들이 살고 있는 이 곳이 도움을 요청해도, 신고해도, 탈출해도 되는 '신뢰할 수 있는 사회'임을 체감할 정도로 보여주지 못한 지역사회라면, 더더욱 이러한 비난을 할 자격이 없다. 

 이제 이 자격을 지역사회 구성원인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먼저 가정폭력은 가정 내 문제가 아님을 인정해야한다. 폭력은 부부관계, 부모와 자녀관계, 그 어떤 관계에서도 인정될 수 없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폭력의 문제를 피해자의 책임으로 돌려서도 안 된다. 외부에 알리지 못하고, 탈출을 결정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에게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의지가 없다고 단언하는 것은 피해자가 갖는 공포와 두려움, 무기력감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제3자들의 시선일뿐이다. 

 이러한 우리들의 시선은 이들 결혼이주여성들에게 또 다른 공포를 더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이 이들의 안전 사각지대를 걷어낼 수 있는지, 오늘 우리 모두가 한번은 생각해보았음 좋겠다. 혹여나 필자가 '아니어야 된다'고 강조한 내용에 자신의 생각이 하나라도 걸려있다면, 이 글이 그 생각을 내려놓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박지영 상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