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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문유하(開門流下), 문을 열고 아래로 흘러라"

이기원의 역사 한 스푼-민주화 성지 원주의 배경 이기원 북원여고 역사교사l승인2021.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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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호저면 고산리 최시형 추모비 답사 모습.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기념해 무위당기념관이 주관했으며 전국에서 30여 명이 참여, 1박 2일 동안 강릉, 정선, 영월, 평창, 원주 일대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를 찾았다.

3·1 운동 당시 서양 선교사 '데이비스 모리스'가 만세운동을 준비하며 도움을 청하던 원주 사람들을 일본 관헌에 고발하면서 원주 읍내 3·1운동이 좌절되었다는 얘기, 뮈텔 주교가 만세운동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음을 눈물로 호소하던 신학생들을 퇴학시켰다는 얘기를 다룬 적이 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던 올해 3월 1일 답사를 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다. 안전하고 수월한 선교 활동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조선 총독부와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하지 않으려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의견도 있었고, 정교분리의 원칙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입장을 달리해서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식민지 지배체제에서 고통 받던 사람들을 보호해주기는커녕 고발하고 퇴학시켰던 행위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답사 후에도 '참다운 종교의 역할이란 무엇인가'란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최근 머릿속을 맴돌던 의문의 답을 찾았다. 황종열 박사의 '지학순과 장일순' 강연에 답이 있었다. 지학순 주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마지막 회기에 주교로 선출되어 공의회 정신을 현실 사회 속에서 실천한 대표적 인물로 설명했다. 세속과의 단절이 아닌 세상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이었다. 지학순 주교는 원주에서 공의회 정신을 실천에 옮겼다. 지학순 주교의 삶을 황종열 박사는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성당 담 밖과 담 안, 제대와 작업장, 성당과 감옥, 감실과 사무실을 이어놓은 분이시다. 신앙인과 일반 시민을 이어 놓으시고, 교회 당시 교회와 서민 대중의 삶의 자리, 종교 주체들과 정치 주체들, 상아탑과 현실, 학생과 지식인과 노동자, 농민과 도시민, 광부와 신협이 만날 수 있도록 바닥을 깔아 준 우리 시대의 한 멍석이시다.

지 주교 구속에 항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결성
1976년 원주선언, 명동성당 구국선언으로 이어져

▲ 1990년 4월 12일 호저면 고산리 해월 최시형 추모비 건립 현장. 무위당 장일순 선생을 중심으로 치악고미술동우회 회원 22명이 뜻을 모아 건립했다. 추모비에는 ‘모든 이웃의 벗 최보따리 선생님을 기리며’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사진제공: 무위당사람들)

성당 담 안에 안주하지 않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서민들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들과 손잡고 생활했던 삶은 1919년 식민지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했던 데이비스 모리스 선교사와 뮈텔 주교의 모습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1965년 천주교 원주 교구가 설립되면서 지학순 주교가 부임했다. 천주교 원주교구는 1970년대 부정부패 추방운동을 전개하며 박정희 정부를 비판했다. 1972년 유신체제를 선포한 박정희 정부는 눈엣가시 같았던 지학순 주교를 민청학련의 배후로 지목해 구속했다.

지학순 주교의 구속에 항의하는 전국 사제들의 투쟁이 전개되면서 원주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결성되었고 1976년 1월 원주에서 '유신정권 퇴진과 회개'를 요구하는 원주 선언이 발표되었다. 원주 선언은 같은 해 3월 서울 명동성당의 구국선언 발표로 이어졌다.

지학순 주교는 평신도였던 장일순과 손잡고 원주가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뿌리 내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4·19 혁명 직후 사회대중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출마했던 장일순은 5·16 군사정변 후 구속되었고, 석방된 후에도 지속적인 감시를 받았다.

이후 천주교 원주 교구에 원주 신용협동조합이 창립되면서 초대 이사장이 되어 활동했다. 평신도 장일순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라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네 글자로 압축해 표현했다.

개문유하(開門流下)
문을 열고 아래로 흘러라.


이기원 북원여고 역사교사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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