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성고등학교 전경, 한일협정 반대 시위 당시 대성고등학교는 지금의 명륜동 대성현대아파트 자리에 있었다.

1961년 5.16 군사 정변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정부는 경제 제일주의와 자립 경제를 내세우면서 경제 개발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하지만 경제 개발을 뒷받침할만한 자본이 부족했다. 반면 6.25 전쟁 특수를 거치면서 경제 발전의 기반을 닦은 일본은 새로운 수출 시장과 자본을 투자할 곳이 필요했다. 여기에 원만한 한일 관계를 바탕으로 동북아시아에서 안정된 동맹 구조를 만들려는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일 수교가 본격 추진되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국교 정상화를 위한 회담이 밀실에서 진행되었고, 굴욕적인 내용이 포함되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1963년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일회담 반대 시위가 확산되었다. 일본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독립축하금 명목의 경제 협력자금(무상 3억, 차관 2억 달러)를 지원받는 대가로 이를 수용했다.

회담 진행 과정에서 일본은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담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일본에 시종 끌려가는 굴욕적 외교가 계속되었다. 굴욕회담 반대 시위도 지속되어 1965년 6월 3일 절정에 달했다.

6월 3일 전국 최대 시위보다 이틀 앞선 6월 1일 원주에서는 대성고등학교 학생들이 한일회담 반대 시위를 전개했다. 고등학생이 참여한 최초의 시위였다. 대성고등학교 학생 300여 명은 “배고픈 우리 살림 6억으로 잘 살 수 없다”, “이완용 2세들아 각오하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원주 시청 앞까지 진출했다.

1965년 당시 대성고등학교는 현재 위치가 아니라 명륜동 대성현대아파트 위치였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나와 진출한 원주 시청의 당시 위치는 현재 중앙동 중앙청소년문화의집 건물이 선 곳이다.

고등학생 참여 최초의 시위 300명 시청까지 진출
7명 제적 장일순 이사장도 도의적 책임지고 사직

▲ 대성고등학교 행정동 앞에는 ‘참되자’라는 교훈을 새긴 비석이 있다. 학교가 대성현대아파트 자리에 있을 당시 세워졌던 것을 지금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구호와 대성고 교가를 부르며 시청 앞에 모인 학생들은 “굴욕외교 즉시 중단하라” 라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시위를 계속했다. 경찰이 출동해서 시위 해산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30여분 동안 연좌시위를 하다가 학교로 돌아왔다.

시위를 마치고 교문에 들어서는 순간 학생회장을 비롯한 학생 7명이 체포되어 원주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연행된 학생들은 밤샘 조사를 받았다. 경찰서장은 대성고 이사장이었던 무위당 장일순이 배후가 아니냐며 다그쳤다. 미리 내려놓은 결론에 맞추어 조사하고 강요하는 행태였다. 현수막을 만든 돈은 누가 주었냐고 추궁도 했다.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한 시위였고 다른 사람의 조종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항변했다. 현수막도 학생들 스스로 돈을 거두어 만들었다고 대답했다. 조사 받는 학생들이 원하는 답을 하지 않자 경찰서장은 연탄집게를 휘두르며 사정없이 구타를 했다. (최정옥의 증언)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던 일곱 명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제적되었고, 장일순 이사장은 도의적 책임을 지고 이사회에 사표를 제출했다.

1960년 3월 14일 원주 농고 학생들이 4.19 혁명에 참여에 이어 1965년 6월 1일 대성고 학생들이 고등학생으로는 최초로 굴욕적 한일회담 반대 시위를 전개한 것은 원주가 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나아가는 디딤돌 역할을 했다.

이기원 북원여고 역사교사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