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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 명성 얻은 35년 진미통닭 김영석 대표

"절망 속에서 베풀며 사는 법 깨달아" 서연남 시민기자l승인202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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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6일부터 전국 이마트에서 우산동 진미통닭 김영석(64) 대표의 양념통닭을 맛볼 수 있게 됐다. 35년 전 33㎡ 남짓한 공간에 통닭집을 차릴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화는 물론 냉장고도 없이 시작한 장사였다. '없으면 굶는다'는 각오로 알뜰하게 모아 1년 뒤 전화도 설치하고 냉장고도 샀다.

 "성공하기 위해 살지 않았다. 하루하루 열심히 정직하게 살았다. 그러다 2008년 원주투데이 맛집에 소개되면서 입소문 나기 시작했다. 내 첫 디딤돌이다"라며 활짝 웃는 김 대표. 이후 2015년 백종원의 3대 천왕에 소개되면서부터는 말 그대로 문전성시였다. 주문 전화가 빗발쳐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다. 매일 닭 200마리를 튀기며 살았지만 이후 엘보우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기도 하다.

 김 대표가 오늘날 전국 명성을 얻은 양념 맛을 내기까지 걸린 시간은 25년 정도. 양념 10g의 차이에도 맛이 달라져 시행착오를 수없이 거쳐야 했다. 발품을 팔며 전국 맛 집을 찾아 다니기도 했고 바삭한 식감을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다. 습도와 온도에 따라 튀김옷 물 배합을 다르게 하는 등 하나부터 열까지 어느 것 하나도 허투루 할 수 없었다.

 작은 것에도 정성을 다하다 보니 2018년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백년가게' 강원도 1호점, 2019 대한민국 소상공인대회에서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이제 진미통닭하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곳이 됐지만 아픔과 상처를 잘 보듬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주저앉지 않고 일어서기까지 고통스러웠지만 한 번 일어서고 나니 쓰러지지 않을 자신감이 생겼다.

 27살 김 대표는 인기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청년이었다. 그러나 불의의 교통사고는 모든 삶을 바꿔놓았다. 다리뼈가 산산조각이 나 36개의 핀을 박는 대수술을 견디며 3년간 병원생활을 했지만, 예전처럼 걸을 수는 없었다. 병원에서 주는 약을 한 번에 먹으며 자살 시도도 했지만 '살 운명'이었다.

 한쪽 다리를 절게 된 후 사회에서 겪은 차별과 멸시는 늪으로 자꾸 끌어당기는 기분이었다. 절망의 시간을 보내다 상원사를 다녀오고 난 뒤 김 대표는 '내게 주어진 운명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이후 치악산 정상을 두 번 올랐고 전국 산을 쉬지 않고 다녔다. 헬스장도 꾸준히 다녔다. 다리가 불편한 김 대표가 산을 오르거나 운동하는 것을 본 장애가 있는 자식을 둔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경우도 많았다.

 "산을 갈 때마다 사람들이 지나간 뒤 셋을 세고 뒤를 돌아봤다. 모든 사람이 뒤돌아서 나를 보고 있었다. 다리를 절며 산을 오르는 사람을 처음 본 것이다. 몇 번을 시험해 봐도 같았다. 통닭집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뛰지 못하니 돈을 내지 않고 도망간 사람도 많았다. 그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내가 베풀 수 있는 것이었다. 몸이 불편한 것을 숨기지 않았다. 나 스스로 당당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픈 과거지만 '그랬었지'라며 추억여행 하듯 이야기를 풀어 놓는 김 대표. 1988년에는 장애인 운전면허증 취득 1호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장애인 운전면허 취득에 대한 매뉴얼이 없어 법 조항을 찾아가며 우여곡절 끝에 딴 면허다.

 진미통닭이 현 상지대 후문에 문을 열 때만 해도 주변은 모두 허허벌판이었다. 바비큐 통닭집을 운영하다 1년도 안 돼 문을 닫고 통닭집을 시작했다. 소스를 납품하는 도매상인 진미상사 대표가 "진미로 해"라고 장난스럽게 던진 한마디가 간판이 됐다. 대학가다 보니 대부분 가게에서 막걸리를 팔 때 김 대표는 우산동 최초 생맥주 판매를 시작했다.

 주변에서 대학생 취향을 모른다며 혀를 내둘렀지만 김 대표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폭발이었다. 하루에 7통씩 판매하니 주변 상가도 차츰 생맥주집로 바꿨다.

 35년을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하다 보니 에피소드도 많고 상지대학교 변천사도 누구보다 잘 안다. 졸업생이 찾아오는 건 예삿일이고 백종원의 3대 천왕에 방송됐을 때는 상지대한의대학생 시절 단골이었던 학생이 한약을 지어 찾아오기도 했다. 군부대가 있어 휴가 나온 군인도 통닭을 먹으러 오고 면회 오는 가족들은 반드시 들려 통닭을 사 갔다. 시외버스터미널과 군부대가 이전하면서 볼 수 없는 풍경이 됐다. 통닭집을 35년간 했지만 정작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김 대표.

 "튀김기와 후드 청소는 평생 한 번도 빼 먹은 적이 없다. 한결같은 맛을 내기 위해 한결같은 정성을 다할 것이다. 평생을 내 곁에 있어 준 아내가 있기에 가능했던 기적이다. 이마트를 통해 좀 더 많은 고객을 만나게 됐으니 맛을 지키기 위해 더욱 열심히 할 것"이라고 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서연남 시민기자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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