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8일 개관한 눈치 없는 도서관.

예술인 공방·작업실 입주 시너지 효과 게스트하우스도 구상

시간의 흐름과 함께 쇠퇴한 장소를 새롭게 경제적·사회적·물리적으로 부흥시키는 '도시재생'이 전국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쓰레기 섬을 '예술의 섬'으로 재탄생시킨 일본 나오시마나 철공소에서 예술인들의 창작소로 변신한 서울 문래동, 커피 문화의 중심이 된 강릉 명주동 등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는 아니다. 원주에서도 공방과 카페, 문화공간이 어우러져 '뉴트로' 분위기가 풍기는 예술시장으로 재탄생한 '미로시장' 사례가 있다.

최근에는 학성동 역전시장이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도시재생 뉴딜사업 추진과 함께 '공공미술 프로젝트-우리 동네 미술사업'이 진행되면서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한 37명의 작가 중 일부는 역전시장에 공방과 작업실을 차리는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주민들과 함께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건물주 점포 무상 제공 '주민 커뮤니티' 공간 탄생
지난해에는 마을사랑방 역할을 하는 은방울 수다방과 역전연가 카페가 문을 열었다. 학성동 도시재생사업 주민공모를 통해 지역 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거듭난 공간이다.

지역 활성화 취지에 공감한 건물주들이 자신의 점포를 무상으로 내놓으면서 실현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정운암 통장의 역할이 컸다. 김은영 학성동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사무국장은 "정 통장이 자신의 점포를 먼저 무상으로 제공하고, 직접 다른 건물주들을 설득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은방울 수다방은 주민들이 일상을 공유하는 마을 사랑방이자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한 예술가들이 주민들과 만나 의견을 교환하는 공간으로도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난 1월에는 사회적협동조합 모두와 원주영상미디어센터가 학성동과 원일동 일대를 직접 걸으며 시민들이 기록한 사진으로 전시회를 개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학성동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는 앞으로 은방울 수다방을 지역 주민들과 전문 작가들이 만든 예술품을 판매하는 아트샵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일과사랑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역전연가 카페도 역전시장 분위기를 한층 젊게 만들고 있다. 장애인 바리스타가 질 좋은 음료를 2천 원의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며, 주민과 소통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 '눈치 없는 도서관' 내부. 장애인 주간활동 제공기관 '피어라풀꽃'이 운영을 맡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10시부터 오후6시까지 운영한다.

'눈치 없는 도서관' 운영…자발적인 도서기부 이어져
지난달 28일 개관한 도서관 역시 점포 주인이 1년간 무상으로 제공한 공간이다. 역전시장 상인과 주민들이 '역전사랑방'이라는 마을공동체를 조직, 원주시 여성친화마을 조성 공모 사업에 선정되면서 추진됐다. 

성별, 나이, 장애 유무에 관계없이 눈치 보지 말고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하라는 의미를 담아 도서관 이름이 '눈치 없는 도서관'이다.

도서관을 채우고 있는 2천여 권의 도서는 지역 사회의 도움을 받았다.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인 기부는 물론, 다른 지역에서도 도서를 기부하는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강원랜드 직원들이 일주일간 모은 책 300권을 기증했으며, 장원물류 박기훈 대표가 200권, 코레일 서원주시설사업소 직원들이 100권의 책을 보내왔다. 

장애인 주간활동 제공기관 '피어라풀꽃'이 운영을 맡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10시부터 오후6시까지 운영한다. 김 사무국장은 "공용 화장실이 없어 불편을 호소했던 시장 상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도서관 내에 시장 방문객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화장실을 마련해 역전시장 활성화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공동체 역전사랑방 대표를 겸하고 있는 정운암 통장은 "마을 사람이 함께 활동할 수 있는 다양한 장소들을 통해 학성동이 하나 되어 새롭게 거듭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 다음 주 개관을 앞두고 있는 동네미술관. 공공미술 프로젝트 참여작가 중 10명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향후 다양한 기획전시 및 대관도 진행할 예정이다.

다음 주 '동네미술관' 개관…기획전시·대관도 추진
다음 주에는 역전시장에 또 하나의 특별한 공간이 문을 연다. (사)민족미술인협회 원주지부(지부장: 신구경, 이하 원주민미협)가 빈 상가를 리모델링해 공공갤러리 성격의 '동네미술관'을 조성 중이다. 현재 내부 마감작업을 진행 중으로 다음 주부터는 주민들에게 개방할 예정이다.

45㎡에 불과한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다양한 장르의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 공간이면서 '동네미술관'이라는 이름 그대로 지역주민들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공공미술 프로젝트 참여작가 중 10명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향후 다양한 기획전시 및 대관도 계획하고 있다.

신구경 원주민미협 회장은 "지역이 원래 품고 있던 낡고 오래된 것들의 가치를 지켜나가면서 지역주민과 상생하는 콘텐츠를 만들고자 한다"며 "역전시장을 아트시장이자 원주 문화의 중심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작가들 모이니 시너지 효과…새로운 '문화중심' 기대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가 역전시장에 공방이나 작업실을 차리고 정착하는 작가도 하나 둘 늘고 있다. 시장 32개 점포 중 7곳에 예술인이 입주했다. 사라지는 동네와 골목을 그림으로 기록해 '추억을 기록하는 사관(史官)'으로 불리는 한국화가 지경 이근우 화백, 판화가이자 한지작가인 이명준 작가 등이 그들이다.

(사)한국옻칠협회(이사장: 이종헌)는 역전시장 내에 협회 사무실을 준비하고 있다. 신구경 원주민미협 회장도 역전시장의 매력에 푹 빠졌다. 작업실로 사용하기 위해 골목 안 낡은 목조주택을 개조 중이다. 향후 찻집과 게스트하우스 운영도 구상하고 있다.

작가들은 역전시장에 예술을 입히고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학성동 낡은 세월의 스토리는 남기고 주민들의 화합과 발전을 이끌어 내는 작업이다.

개관을 앞둔 동네미술관 앞 점포 외벽은 작업 중 깨진 타일을 따로 모아 파타일로 장식했다. '치유의 상징'이다. 신 회장은 "시장 상인과 주민, 공공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도 어떤 면에서는 아픈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라며 "깨진 타일을 모아 멋진 작품을 만든 것처럼 상처 입은 사람들이 모여 이 공간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