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서 믿고 맡기는 꽃꽂이 실력자였다. 외국에서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도 청와대 테이블에 놓인 꽃꽂이는 그녀의 작품이었다. 평생 꽃과 살 것 같았는데 건설업을 하던 남편의 공황장애는 다른 삶을 선택하게 했다.

 "남편이 조용한 곳으로 가자고 했다. 생각지도 않았던 이사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신림에서 된장, 고추장, 어간장을 만들고 있는 정영애(65) 정토담 대표가 모든 것을 접고 처음 간 곳은 경남 고성. 꽃 농장을 운영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겨우 버티고 있는데 2002년 8월 태풍 루사로 농장이 하루아침에 폐허가 됐다. 나무로 지은 하우스를 모두 불태우고 신림으로 왔다. 연고도 전혀 없는 곳으로 이사 오니 먹고 살길이 막막했다. 꽃이 아닌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주변에서 장이 맛있다며 판매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서 장을 담았다.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에게만 팔다 본격적인 사업을 하게 됐다."

 된장, 고추장 등을 담아 팔다가 동생에게 고성 살 때 마을 어르신들에게 배운 어간장을 보냈다. 동생은 환호를 지르며 맛있다고 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주변에서 사고 싶어 한다며 더 담아 달라고 조르는 동생을 외면할 수 없어 양을 늘렸다. 결국, 정 대표는 2005년경 대량 생산을 시작했다. 바닷가도 아니고 강원도 산골에서 어간장이라니 의아해 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한 번 맛본 사람은 반드시 재주문했다.

 어간장은 대표적인 수산발효식품으로 어패류에 소금을 넣어 1년 이상 숙성 시켜 걸러낸 액체 조미료를 말한다. 요리 고수 사이에서는 간장보다 한 수 위로 꼽히기도 한다. 정 대표의 어간장 주재료는 멸치다. 멸치를 사서 소금을 넣어 삭힌 다음 걸러 낸 국물은 액젓으로 판매하고 건져낸 멸치에 물 20%를 넣고 4시간 동안 끓인 후 면포에 걸러 낸다. 어간장이 맛있기 위해서는 재료의 신선함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원주에서 싱싱한 멸치를 사는 것은 불가능해 고민 끝에 남해수협에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좋은 멸치를 살 수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수협 담당자가 연결해 준 사람은 멸치 전문가 중 최고였다. 버스를 타고 7시간을 내려가 1박 2일 동안 싱싱한 멸치 고르는 방법을 배웠다. 그가 추천해 준 것은 알배기 봄 멸치가 잡히는 5월 10일~20일 사이에 잡히는 것이었다. 날짜가 빠르거나 늦어도 제맛이 나지 않았다. 연간 정토담으로 배송되는 멸치는 15톤 정도. 5월 10일부터 열흘 간 시간 차이를 두고 잡은 날 바로 올라온다. 멸치가 오면 그날부터 열흘간은 어간장을 담는 날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금 양이다. 2년간 간수를 뺀 소금을 사용하는데 소금 양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너무 적게 넣으면 발효가 안 되고 많이 넣으면 짠맛 때문에 멸치의 맛을 느낄 수 없다. 소금 넣는 일만큼은 정대표가 직접 한다. 소비자들이 짜다는 후기가 있어 소금을 덜 넣었던 해에는 발효가 제대로 되지 않고 썩어서 모두 버린 적도 있다. 이후부터 소금 양 만큼은 변함없이 지키고 있다. 1차 발효된 것은 액젓으로 팔고 다시 어간장을 담은 후 18개월을 숙성시킨다. 재료는 물과 소금뿐이다. 어떤 첨가물도 넣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맛이다. 정 대표의 집을 지켜주는 산, 실개천, 맑은 공기, 햇살이 저장고다. 

 정성으로 담은 어간장과 고추장, 된장 등 세트로 된 상품을 2006년 농촌진흥청 전통생활기술공모전에 출품했는데 심사위원 7명의 만장일치로 대상을 수상했다. 공모전 출품 이유는 간단했다. 입선을 하면 코엑스에 전시할 기회를 준다고 해서 입선하면 좋겠다는 기대감으로 했는데 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이후 국립농업과학원 디자인공모전 최우수상, 강원도 전통식품 베스트공모전 최우수상을 받았고 미국 FDA인증, ISO22000인증, 강원도농수특산물 인증, 한국무형문화유산 어간장 명인까지 선정됐다. 뿐만 아니다. 꽃꽂이 경력을 살려 압화 강사 자격증을 취득해 출강을 하고 있으며, 삶에 지친 사람들이 힐링할 수 있는 체험장도 준비하고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과 한동네에서 살았던 정 대표. 어린 시절 같이 뛰어 놀고 연락을 하며 지냈던 동네 오빠였다. 봄꽃이 피기 시작하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다. 그래서 더 잘 살고 싶다는  정 대표는 "먹을거리만큼은 정직하게 만들고 싶다. 내 음식을 먹는 사람의 건강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라며 "앞으로는 어려운 사람을 더 돕고 싶다.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양보하고 배려하는 삶을 살며 곱게 나이 드는 게 나의 바람이다"고 했다.

서연남 시민기자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