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항거하여 전국적으로 일어난 민족해방 기미독립만세운동. 서울 태화관에서 민족 대표들의 독립선언이 있었고, 학생들과 시민들이 탑골공원에서 전개한 만세운동을 필두로 전국적으로 획산되었다.

 원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제의 치하에서 갈망하는 독립의 불을 당긴 3·1만세운동은 원주에서도 부론면, 소초면, 귀래면, 흥업면, 문막읍, 지정면, 호저면 등 곳곳에서 만세시위와 봉화시위 등 독립의 의지를 담은 농민들의 시위가 줄지어 일어났다. 원주에서의 3·1만세운동 참가자는 2천여 명, 그중 140여 명이 검거되는 등 만세운동은 이후 곳곳에서 농민회와 노동회가 조직되고 항일학생운동 등이 꾸준히 전개되었다.

 올해는 삼일절 102주년이다. 3,1만세운동 기념일을 그냥 지낼 수 없어 원주지역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몇 곳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민족문제연구소 원주횡성지회에서 마련한 원주 만세운동 지역답사에 참여하자는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지난 1일 늦은 아침 주룩주룩 장맛비처럼 내리는 비를 맞으며 모인 장소는 제일감리교회 주차장이었다. 의아했지만 처음 뵙는 민족연구소 회원들과의 인사 후 안내하는 비석을 소개 받고서야 이곳에 모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제일감리교회가 있는 일산동에서 20여 년을 살면서도 교회마당에 있는 모리스 선교사 비석과 관련한 3,1운동의 아픈 기억을 처음 알게 되어 부끄러움이 앞섰다.

 기독교의 전파와 전도를 위해 이곳에 정착한 모리스 선교사의 교회사적 공로는 인정할만하며 교회사에 남을만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전도에 방해가 될 것이 두려워 3,1 만세운동의 전조를 알고 밀고하여 원주시내에서의 만세운동은 사전에 그 싹이 잘리게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더구나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모리스 사택이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안에 턱하니 자리하고 있지만 그러한 사실을 아는 시민은 그다지 많지가 않다.

 그 시대의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져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모리스 사택은 지금은 일산사료실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가 보진 못했다. 모리스의 밀고로 원주시내에서는 만세운동의 불길이 타오르지 못했다. 뒤늦게 알게 된 모리스의 행위에 내 가슴만 타올랐다.

 

▲ 지난 1일 흥업면 한라대 교정에 있는 만세운동 기념비를 찾았다.

 부론면행정복지센터 마당에 자리한 만세운동비 앞에서는 원주 최초로 성공한 만세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원주 군수였던 오유영이 군민들 앞에서 만세운동을 저지하려는 강연을 하자 노림의숙 학생들이 돌아가는 길목을 가로 막고 함께 만세를 부를 것을 요구하였고 이를 지켜보던 많은 군민이 소리 높여 만세를 불렀다는 설명을 들었다.

 우리민족의 반일의식이 얼마나 높았는지 상상이 되었다. 당시 오유영은 이 일을 일본헌병대에 밀고하여 만세운동에 가담한 당시 18세에 불과했던 한범우와 정현기 등이 체포되고 한범우는 모진 고문 끝에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 시대에 어른답지 못한 어른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일본에 조아리며 자신만의 안위를 위해 비굴했던 모습을 상상하니 또 한 번 치가 떨렸다.

 흥업면으로 가는 길에 노림의숙에 들러 마당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노림의숙이 있었던 자리에는 모 기업의 간판만 덩그러나 달린 채 마당은 헐렁하니 을씨년스러웠다. 마당을 둘러보니 이승복 동상을 비롯한 몇몇 근대역사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동행한 한 선생님이 "아마도 이승복이 살아있었다면 할 말을 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으로 다른 역사에 남지 않았을까?" 의미심장하게 한마디 건넨다. 노림의숙에서 의기투합한 젊은 청춘들이 모여 민족을 걱정하고 독립을 꿈꾸며 학문에 정진하는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뜨거워졌다.

 노림의숙 길 건너편, 백년은 넘었을 법한 느티나무 한그루는 노림의숙의 청춘들과 그들이 꿈꾸던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의지를 모두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백발의 머리를 늘어뜨리고 비 오는 거리를 지키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흥업면 한라대 입구에 서 있는 만세운동 기념비 앞에 서서 묵념을 드리며 그래도 잊지 않고 국화꽃 한 바구니를 보내주신 원주시장님의 따뜻한 마음에 우울한 마음이 많이 가셨다. 흥업초등학교 교정에 있었다는 만세운동 기념비는 어느 해인가 이곳 한라대 교정으로 옮겨졌다. 그 연유에 대해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기념비 보존을 위한 일이라면 수긍할 일이다.

 빗속에서 만세운동의 현장을 돌아보며 원주가 가지고 있는 민족성과 흔적들을 더욱 면밀히 찾아내고 고증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원주는 어떤 도시일까? 어떤 도시였을까? 역사가나 전문가만이 알고 있는 도시가 아니라 시민 모두 우리가 살고 있는 원주의 위기의 순간과 의지의 시간을 알게 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선열들의 발자취를 통해 반성하고 깨달음이 많은 하루였다.

홍연희 원주문협 회장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