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도내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4만2천명 감소했다. 비임금근로자와 임시직 취업자가 급감한 것. 반면 실업자는 1만2천 명이나 증가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고용 한파가 불어닥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용 취약계층의 애환은 어느 때보다 깊을 수밖에 없다. 엄동설한 길거리에서 생존을 주장하는 '을'의 외침을 시리즈로 보도한다.

②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노조원 박현숙 씨  

"7년 소송 끝에 도로공사 직원으로 복직했지만 
위험 상존한 잡무 배정…임금도 종전보다 줄어"

▲ 한국도로공사 박현숙 씨는 매주 수요일마다 원직 복직 집회를 열고 있다.

매주 수요일 아침7시50분. 한국도로공사 원주지사 소속 박현숙(51) 씨가 피켓을 드는 시간이다. "원직 복직", "최저임금 보장" 회사를 향한 그녀의 외침이 절절하다. 작년 12월 첫 주부터 3개월째 수요선전전에 나서고 있다. 

박 씨는 2007년부터 경기도 하남 톨게이트에서 요금 수납업무를 해왔다. 지난해 원주지사로 발령받은 후부터는 고속도로 암거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산비탈 담장에 넝쿨을 제거하는 것도 그녀의 일이다.

경기도 여주에서 횡성 둔내까지, 76㎞에 해당하는 구간을 현장보조원 27명이 맡고 있다. 20년 넘게 수납업무를 하던 그녀도 한국도로공사의 업무지시로 이 일에 투입되고 있다. 부당하다며 회사에 '원직 복직'을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불가능'뿐이었다. 

한국도로공사는 1995년부터 톨게이트 업무를 외주화했다. 처음에는 IMF 구조조정에 따른 퇴직자 보상의 의미가 강했다. 나중에는 공공부문 효율화 명목으로 외주화가 이뤄졌다. 2007년 입사한 박현숙 씨도 2009년 외주업체 근로자로 소속이 바뀌었다. 이렇게 신분이 변경된 톨게이트 근로자가 수천 명에 달했다.

2013년 이들은 법원에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하며 정규직화를 주장했다. 외주업체 신분이었어도 도로공사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 매년 용역업체와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고용불안도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이유였다. 

한국도로공사는 정규직 전환 대신 자회사 운영을 결정했다. 2019년 7월, 한국도로공사서비스를 설립한 것. 그해 6월 민간회사와의 계약 기간이 끝나기 때문에 수납 인력을 자회사로 편입시킬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전국 요금수납원 6천500명 중 5천 명이 도로공사 자회사로 편입됐다.

이를 거부한 1천500명은 계약기간 만료로 사실상 쫓겨났다. 그런데 그해 8월 29일, 대법원은 '외주 용역업체 소속으로 일하는 요금수납원도 한국도로공사 직원'이라고 판결했다.

한국도로공사 측은 근로자 790명가량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겠다고 밝혔다. 해직 근로자들은 다시 일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머지않아 실망으로 바뀌었다. 한국도로공사 소속이 됐지만, 직군은 현장지원직(무기계약직)으로 배정됐기 때문.

도로공사는 이들에게 톨게이트 수납업무가 아닌 고속도로 청소, 넝쿨 제거 등의 잡무를 배정했다. 이 때문에 박현숙 씨도 경기도 하남에서 원주까지 내려와 현장 보조 업무에 투입되고 있다. 

박 씨는 "도로공사에 원직 복직을 요구했지만 톨게이트 업무를 자회사로 넘겨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돌아온다"며 "수납업무가 아닌 비슷한 업무 배정을 요구해도 들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원주지사에 배정된 현장보조원들은 고속도로에서 사고 위험에 노출된 채 일을 하고 있다.

급여도 전보다 훨씬 줄었다. 톨게이트 계약직 당시에는 월평균 실수령액이 220만 원 정도였지만, 지금은 200만 원이 안 되는 임금을 받고 있다. 급여 수준이 가장 낮은 '조무직 노동자'보다 15%가량 임금이 낮다. 이도 도로공사로부터 10년 경력을 인정받은 금액이다.

나이가 많은 직원들은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아 한 달 임금이 150만 원대에 불과하다. 회사가 급여 수준을 맞추기 위해 주 4일 근무를 배정한 것이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관계자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던 정부의 약속은 사실상 폐기된 상황"이라며 "법원 판결로 힘겹게 전환한 정규직 일자리마저 나쁜 일자리가 됐다"고 말했다. 

부당한 대우와 열악한 임금에도 박현숙 씨는 끝까지 버틸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처지를 알아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 지난해 원주지사에 발령받아 수요선전전을 시작할 때만 해도 누구 하나 동조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함께하는 동료들이 7명으로 늘어났다.

박 씨는 "언제일지는 알 수 없지만, 동료들과 예전 일터로 돌아가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며 "끝까지 목소리를 내 원직 복직을 이뤄낼 것"이라고 말했다.   

최다니엘 기자  nice4s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