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자(81) 씨의 팔순 인생은 시 쓰기와 늦은 배움의 연속이었다. 배우지 못한 아쉬움을 시로 달랬으며, 뒤늦은 배움을 통해 시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엄마이면서 아내, 딸이자 며느리, 생계를 위한 미용사로 치열하게 살아가면서 환갑의 대학졸업생, 칠순 등단 시인으로도 불릴 수 있었던 건 그녀의 열정만큼은 청춘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6.25 전쟁을 겪게 된 정 씨는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어렵게 공부했다. 그마저도 가부장적인 할아버지로 인해 한 달에 3~4번 울타리 구멍을 몰래 빠져나와 학교를 오가야했다. 겨우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았지만 중학교 진학은 꿈도 못 꿨다. 그렇게 학교와 멀어진 정씨는 19살에 미용기술을 배워 일찍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결혼을 하고 자녀를 양육하면서도 배움에 대한 갈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음을 달래기 위해 습작처럼 끄적거리던 것이 시 쓰기의 시작이었다. 당시 시집은커녕 시를 읽어본 적도 없던 정 씨는 시 인줄도 모르고 글을 썼다. 43살 중년의 나이에 다시 공부하기 위해 사업체 중학교에서 야간반을 다녔다. 정 씨는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딸이 같은 학교 1학년 주간반으로 입학했다"며 "등하교 시간에 마주칠 때마다 딸이 부끄러워할까봐 항상 교문을 빙 돌아다녔다"고 말했다. 딸은 엄마를 볼 때면 반갑게 인사했지만, 정작 정씨는 곤혹스러웠다고. 

몇 십 년 만에 시작한 공부에만 몰입하기엔 정 씨가 해내야 할 역할은 너무 많았다. 여전히 자녀를 양육하면서 사업하는 남편 내조와 미용사 일을 병행했다. 친정어머니의 건강악화로 병수발까지 만학도의 몫이었다.

그럼에도 뒤늦은 배움이 주는 기쁨이 컸기에 주어진 많은 역할들을 묵묵히 해나갔다. 중학교 과정에서 문학시간은 그동안 시 인줄도 모르고 썼던 정 씨의 글솜씨를 다듬는데 큰 도움이 됐다. 우연히 정 씨의 글을 본 남동생과 가족들의 칭찬을 용기 삼아 첫 번째 시집을 냈다.

이후 방송통신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까지 진학했다. 글쓰는 걸 워낙 좋아했기에 국문학과 진학을 희망했지만 지인의 권유로 2년제 행정학과에 입학했는데, 쉰을 넘긴 정 씨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수업방식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시험기간 강의실을 잘못 찾아 수강하지 않는 과목의 시험지에 답안을 제출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대학 캠퍼스의 낭만은 느껴보지도 못했다. 시어머니 간호를 병행하며 공부해야했기 때문이다. 그토록 기대했던 대학졸업식 날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졸업장만 겨우 챙겨와 빈소를 지켰다.

얼마 후 남편 사업이 부도 위기를 맞게 되자 생계를 위해 미용 일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밖에도 집안에 여러 악재가 겹쳐오면서 안면마비와 우울증이 같이 찾아왔다. 몸과 마음 모두 지친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정 씨는 4년제 국문학과로 편입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시에 대해 심도 있게 공부하면서 어린 동기들과 MT도 가고 캠퍼스 생활을 즐기자 몸과 마음 모두 차차 회복됐다. 

정 씨는 "힘든 몸과 마음을 공부와 시를 쓰며 다시 추스를 수 있었다"며 "돌이켜보면 늘 힘든 상황에서 마음과 몸이 흔들릴 때마다 시를 쓰면서 스스로를 다잡았다"고 말했다. 졸업 후에도 꾸준히 시를 써오며 칠순의 나이에 등단하는 기쁨을 누리게 됐다. 

그런 그녀가 지난 해 말 10년 만에 팔순 기념 네 번째 시집을 출간했다. 코로나19로 팔순잔치를 치르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시집을 내며 팔순을 기념하기로 한 것. 몇 해 전 남편을 떠나보낸 슬픔과 소소한 가족 이야기, 계절의 변화, 시사 주제까지 평소 그녀의 관심사를 담은 시를 엮었다. 돌이켜보면 살아온 굴곡도 모두 시상이 되었다는 그녀는 앞으로도 남은 인생을 시로 노래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