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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최홍원을 만났다

원주에서 최홍원이라는 화가를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이분이 원주가 아닌 다른 곳에서 작업을 하셨어도 이렇게 묻혀 있었을까? 김병호 조형예술학박사 백석대대학원 교수l승인202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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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림 그리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다. 어느 날 선생님이 입원해계신 병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선생님은 더이상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며 스케치북을 들고 울고 계셨다. 평생을 그림 그리는 일에만 천착하셨던 선생님의 그 눈물의 의미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분은 그렇게 모든 영감조차도 남김없이 쏟아내며 지난했던 예술가의 길을 마치셨다"(어느 제자)

 올해는 최홍원 화백이 소천하신 지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필자는 며칠 전 최홍원 화백이 생전에 쓰시던 화실을 방문했다. 굳게 닫혀있는 화실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내 감정이 일시 정지된 느낌이었다. 주인이 떠난 후 10년의 세월을 간직하고 있는 화실은 작가의 진실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가지런히 쟁여져 있는 캔버스, 미처 틀에 낄 수 없어서 두루마리로 묶어둔 채로 쌓여있는 엄청난 양의 작품들(4천여점), 이젤 귀퉁이와 팔레트에 쌓여있는 물감 찌꺼기의 높이는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예술혼을 불태웠는지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화실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묵주가 목에 걸려 있는 작은 모차르트 석고상 그리고 낡은 오디오와 가지런히 쌓여 있는 클래식 테이프들이었다. 선생님을 기억하는 제자들은 그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했는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미술 수업 시간이나 작업을 하실 때는 항상 음악을 틀어 놓으셨어요. 특히 모차르트 음악을 좋아하셨어요.

 어느 해인가 크리스마스 때 제자가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기념'으로 만든 전집 CD를 선생님께 선물했는데, CD를 받으시더니 합장을 하시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셨어요. 그분은 진심으로 모차르트의 음악을 사랑했어요. 아마도 선생님의 끝없는 상상력과 자유로운 표현은 모차르트의 음악과 닮은 것 같아요."

 화실의 낡은 오디오에서 모차르트의 음악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유독 모차르트를 사랑했던 화가 그래서 그의 작업 저변에 흐르는 조형적 특유성이 자유로운 리듬감이 아닐까 생각했다.

 현대미술이 '대립가설 방법(method of the alternative hypothesis)'이라는 강력한 도구로 비상식적 상상력을 적극 수용할 수 있는 업적을 남겼다면, 화가 최홍원은 현대미술의 방법을 가장 순수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용하고, 실험하고, 확장해나갔다.

 "나는 우리의 근원적인 정신세계나 역사성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최홍원)라는 말처럼 그의 작품 기저에는 토속신앙의 이미지들-새, 서낭당, 불화-이 주류를 이룬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현대성이라는 조형적 변주와 토속적 정신성의 조화라고 말 할 수 있다. 화실 책장에는 토속신앙 관련한 서적들이 여전히 꽂혀있었다. 모차르트 석고상 목에 묵주가 걸려있는 부조화의 절묘한 조합이 최홍원 작가의 작품세계를 함축적으로 설명해주는 알레고리 같았다.
"거창한 시대적 평가나, 화가로서의 직업의식에 구애됨 없이 단지 그린다는 것 그 자체로서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라는 작가의 소신이 화실 곳곳에 선명한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선생님과 마음의 인사를 나누고 화실을 나섰다. 감추어진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원주에서 최홍원이라는 화가를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문득 이분이 원주가 아닌 다른 곳에서 작업을 하셨어도 이렇게 묻혀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병호 조형예술학박사 백석대대학원 교수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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