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넘게 한국 대중음악을 기반으로 전자오르간, 피아노, 아코디언 등 건반악기를 연주해온 이정구(62) 아코디언 연주자. 오랜 시간 악기를 손에서 놓지 않고 전국 곳곳을 누비며 트로트, 왈츠, 탱고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원주에서 아코디언 전문학원을 운영하며 수강생들에게 아코디언 연주법을 쉽게 가르치는 일도 열심이다. 최근에는 원주의 뮤지션들과 원주 아카데미극장을 추억하는 곡을 만들어 연주했고, CD로도 제작됐다.

 이 씨가 음악과 처음 만난 건 고등학생 때 옆집 형에게 기타 코드를 배우면서다. 1978년부터 본격적으로 연주자의 길을 걸은 이 씨는 처음엔 카바레나 무도회장에서 건반을 쳤다. 약장수 공연에서 연주한 경험도 있다. 악기 연주법에 대해 정규 교육을 받진 않았지만 일찌감치 다양한 무대에서 연주자로 발을 내디디며 실력을 쌓았다. 생계 문제로 몇 년간 장사를 한 적이 있지만 그때도 악기 연주는 계속했다. 악기를 연주하고 음악을 알아갈 때마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 더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코디언은 2000년에 우연히 그러나 운명처럼 만났다. 평소 잘 가던 식당에서 어느 날 식당 구석에 놓여 있는 아코디언을 발견한 것이다. 웬 아코디언이냐고 사장에게 물어봤더니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싶어 샀는데 배우는 것도 어렵고 따로 연주할 사람도 없어서 방치해뒀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사장에게서 아코디언을 구입해 독학으로 아코디언 연주법을 익혔다.

 혼자서 아코디언 연주를 익히다 보니 우여곡절도 많았다. 피아노와 전자오르간을 오래 쳤으니 아코디언도 쉽게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초반에는 서울이든 부산이든 전국에 있는 아코디언 연주자들을 찾아 가서 배웠다.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 아코디언 동호회나 연주회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곳에서 만난 연주자들과 공연도 여러 차례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엔 아코디언을 정통으로 배우고 연주하는 연주자가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씨는 "바람통을 이용해 소리를 내는 아코디언은 멜로디와 화음 모두 연주할 수 있어 다양한 장르에 사용된다. 연주하기가 까다로운 면이 있지만 하면 할수록 자신의 감정을 풍부하게 소리로 표현할 수 있어 매력적인 악기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아코디언에 대한 인식이 저평가되는 것 같아 아쉽다. 아코디언은 다양한 음색과 연주법으로 혼자서 오케스트라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그의 마음은 아코디언에 대한 열정과 애정으로 번졌고 아코디언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연주자들의 영상을 많이 찾아보았다. 러시아의 건반악기인 버튼식 아코디언(바얀 bayan)을 구입해 연주법을 익히기도 한다. 공연과 강습으로 바쁜 일상이지만 틈나는 대로 여러 연주자의 영상을 보고 연습에 매진한다.

 연습한 영상이나 음원은 페이스북에 올려 외국인 연주자들과 소통하고 친구를 맺기도 한다. 페이스북에서 사귄 미국인 친구와는 직접 미국 미시건주에 가서 만나 아코디언도 저렴하게 구입하고 교제도 나눴다. 한국에서 온 이 씨를 잘 대접해줘 답례의 표현으로 한국 트로트 곡 악보와 직접 연주해 녹음한 음원 30여 개를 보냈다. 이 씨는 "코로나19가 종식되고 기회가 되면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축제에 친구와 함께 참여하고 싶다. 그곳에서 한국의 트로트를 같이 연주하고 싶은 꿈도 있다."고 말했다.

 40년 넘게 건반악기로 수많은 한국의 대중가요를 연주해서인지 웬만한 곡의 즉흥연주를 능숙하게 해낸다. 즉흥연주에 단련돼 있다 보니 세계 어디를 가도 아코디언만 있으면 버스킹 공연을 펼칠 수 있다. 아코디언으로 정통 트로트의 진한 감정을 진심을 다해 담아내고 싶은 열망이 있다. 또한, 트로트뿐 아니라 국악에도 관심이 많고 좋아해 해금을 배우기도 했다. 5년간 서울로 해금을 배우러 다니면서 국립국악원 공연에도 연주자로 참여했다. 해금 연주자로도 활동할 마음이 있었지만 관절염이 와서 아코디언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원주에서 열리는 각종 문화제나 행사에 아코디언과 피아노 연주를 해왔다. 사회복지관이나 봉사로 공연한 횟수도 엄청나다. 자신의 연주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장르나 무대를 가리지 않았다. 이 씨는 작년부터 '음악치료'에 관심을 갖고 사이버대학에 편입해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실습 과정으로 어려움에 처한 수강생에게 배운 내용을 접목했고, 음악으로 심리치료가 가능하다는 걸 확인했다. 앞으로 음악치료연구소를 개설해 노인들을 위한 음악치료를 연구하고 싶다. 연주가로, 선생님으로 또 연구자로 더 많은 이들에게 긍정 에너지를 전할 이 씨의 내일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