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젝트를 진행한 김희범 프로듀서(재클린)

 원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단관극장인 '아카데미극장' 주변 평원로는 과거 경양식 레스토랑, 레코드점, 화방, 책방 등이 즐비해 사람들로 북적이던 거리였다. 하지만 가게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구도심이 되면서 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해졌다. 그렇게 아카데미극장과 그 일대는 사람들에게 잊혀진 공간이었다.

 하지만 2016년부터 뜻있는 시민들이 아카데미극장을 복원하기 위해 나섰고 지난 8월, 14년 만에 개방된 아카데미극장에서 열린 '안녕 아카데미' 행사는 시민들의 추억을 소환했다. 뿐만아니라 원주의 뮤지션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아카데미극장과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는 노래를 만들고 음반을 제작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일명 'A.S.A.P(Academic Sound Astral Project)'.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음반을 제작한 김희범 프로듀서(재클린)를 만났다.

 

▲ 아코디언·건반연주자 이정구 씨.

 원주에서 나고 자랐으며 30여 년 동안 지역에서 작곡가, 기타리스트, 프로듀서 등 다양한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김 씨는 14년 만에 다시 열린 아카데미극장의 프로젝트 제안을 받고 갈 일이 생겨 기뻤고, 할 일이 생겨 즐거웠다. 그는 혼자만의 곡으로 앨범을 만들지 않고 원주에서 음악 활동을 하며 만난 10명의 뮤지션들과 공동 앨범을 만들기로 했다.

 A.S.A.P를 진행하는 과정은 그 시절의 자신을 만나는 여행이고 지금의 원주를 기록하는 에세이였다. 뮤지션들 개개인의 추억이 담긴 아카데미극장에서 공간의 소리를 담고 곡을 창작해 녹음한다는 것은 매력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움이 많았다. 오래된 공간에 잔뜩 쌓인 먼지와 곰팡이 틈에서 호흡하며 작업하는 것이나 장마철에 녹음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일정도 변경됐다. 이 때문에 당초 계획대로  프로젝트가 진행되진 못했지만 더 완성도 높은 음반이 나오게 되었다. CD가 없어지는 요즘이지만 김 씨는 아카데미극장이 가진 이미지를 고려해 CD로 제작했다.

 

▲ 돌멩이 밴드 리더 김선인 씨.

 여러 명의 뮤지션이 참여한 만큼 장르도 다양하다. 퓨전 국악, 컨템포러리 블루스와 재즈를 접목한 곡, 기타 연주곡, 아코디언 연주곡 등 각각의 개성이 담긴 다채로운 곡을 들을 수 있다. 모두 다른 곡이지만 김 씨의 프로듀싱과 기획력으로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듣다 보면 아카데미극장, 원주의 옛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 국악 창작그룹 더튠의 멤버 조율 씨.

 이번 앨범에 참여한 아코디언 연주자 이정구 씨는 "어렸을 때 아카데미극장에서 단체관람도 했고 극장이 문을 닫은 뒤에는 인근 이북오도민회 사무실을 회원 신분으로 자주 드나들었다"며 "옛 추억을 떠올리며 즉흥적으로 연주했고 극장에 대한 마음을 곡에 더 많이 담지 못한 것 같아 아쉽지만 극장이 다시 시민 품으로 돌아와 이곳에서 꼭 연주하고 싶다"고 말했다.

 '안녕'이라는 곡을 만들고 부른 돌멩이 밴드의 리더 김선인 씨는 "원주에 2007년부터 거주해 예전 아카데미극장에 대한 추억은 없지만 그 주변을 자주 방문하면서 근대문화유산인 아카데미극장이 없어진다는 게 아쉬웠다"며 "아카데미극장이 가진 희로애락을 가사에 담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 싱어송라이터 '고놈 요한' 심상민 씨

 김희범 씨가 원주의 뮤지션들과 원주를 소재로 한 음반을 발매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1년 '재클린 원주를 산책하다'를 시작으로, 2012년 '재클린 원주를 여행하다', 2013년 '재클린 원주를 이야기하다'까지 3부작 시리즈로 음반을 발매하면서 신림, 반곡역, 간현역 등 원주의 장소와 원주의 음악인들을 담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연대의 즐거움과 가치를 아는 뮤지션이다. "원주에 살면서 꾸준히 활동해온 뮤지션들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다. 음반 제작은 내가 시작했지만 친구들을 소개하는 장이 되어 좋다"고 말하는 그는 이번 음반에 담은 곡들이 필요한 곳 여기저기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사용되길 기대했다.

 A.S.A.P 음반은 오는 4일부터 7일까지 아카데미극장에서 열리는 '안녕 아카데미' 행사 때 구매할 수 있다. 행사 이후에는 온라인 음원으로도 출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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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아 시민기자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