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경영 문제로 지역방송국을 도 단위 총국체제로 통폐합한다고 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한 행동의 일환으로 지역의 이런저런 단체에서 내건 현수막이 요란하게 걸려 있다. 초기에는 원주방송국 담벼락과 도심지 몇몇 곳에 게시되던 현수막이 읍면동으로 할당(?)이 되었는지 면지역까지 내걸리기 시작했고, 이를 바라보는 어떤 시민은 현수막을 읽으면서 "KBS가 이사간데?" "KBS가 망했나봐"하는 황당한 소리를 한다.

 홍보 부족을 탓하자는 게 아니다. 어쩌면 그동안 공영방송의 존재감이나 역할이 미약했다는 반영일 수도 있고, 현수막을 걸고 외치는 투쟁과 구호에 식상해진 주민들의 무관심이라는 단상(斷想)이다.

 혹자들은 과거 '편파 보도'를 일삼던 공영방송의 존재 가치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1964년 태장동에서 문을 연 KBS원주방송국은 공영방송으로서 오랫동안 주민들과 회로애락을 함께해 왔기에 지역방송이 폐쇄된다는 것은 지역방송국의 역할과 기능은 차치하고라도 원주시민의 정서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고 원주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런 거대한 문제는 지역의 민초가 거론할 이야기는 아니기에 'KBS원주방송국 폐쇄 반대'와 관련된 의견이 아님을 전제로 필자는 단지 현수막에 표현된 문구에 관한 이야기만을 해보고자 한다. 거리에 현수막을 게시하려면 정해진 규격과 지정된 장소가 있고 내용에 대한 심의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미풍양속에 저촉되는 표현」이라든지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표현」 등은 '사전에 심의를 통해 걸러지겠지 라는 게 상식인데 KBS 관련 현수막을 보면서 그런 상식은 빗나가게 된다.

 일부 현수막의 내용이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표현으로 차마 읽어 내리기 거북스러운 내용으로 표현돼 있기에 원주시민 전체의 수준으로 평가될까 두렵다.

 모 단체에서 내 건 현수막 내용을 살펴보면 '도청도 춘천에 뺏겼는데 원주KBS도 잡아먹겠다고?' 라고 쓴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무지의 극치를 보여주는 내용으로 원주시민으로서 얼굴을 들기에 부끄러운 내용이다. 인구 35만, 강원도 최대도시라고 하는 지역의 단체 현수막치고는 유치하고 저속하기에 여기서 잠시 강원도청과 관련해 1995년에 강원도에서 발행한 『강원도사』의 내용 일부를 옮겨본다.

 '한국전쟁이 시작된 후 1951년 4월 15일 춘천이 함락되면서 1·4 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을 갔던 강원도청은 전세 호전으로 원주읍 일산동에 강원도청 임시사무소를 개설했다. 이 임시사무소는 1953년 7월 30일 강원도청이 춘천으로 정식 수복할 때까지 도청의 모든 기능을 수행했다.'

 어떤 업체에서 내건 현수막 하나 더 소개하면 'KBS 사수하자 춘천에 줄 수 없다'라는 내용이다.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내용으로는 최우수상 감이다. 춘천시민이 저런 내용의 현수막을 보면 뭐라고 할까? 먼저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KBS가 지역방송국을 총국체제로 한다는 것은 KBS의 경영 문제이지 춘천 사람들이 원주KBS를 가져가겠다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서 춘천사람들이 KBS를 통폐합하라고 요구한 적도, 강요한 적도 없다. 그런데도 마치 춘천에서 원주의 방송국을 빼앗아 간다는 피해의식(?)에 기인한 것 같은 내용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원주시민은 단지 KBS와 관련 부처에 지역방송국 존치 필요성만 어필하면 된다. 가만히 있는 춘천시민에게 억지를 부리고 떼를 쓸 일이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누구의 지적이 있었는지 지난 수개월 동안 뜻있는 시민들의 눈총을 받으며 걸려 있던 전자의 현수막 하나는 최근에 철거가 됐다.

 「1군사령부 반환」, 「캠프롱 조기반환」 등의 여론이 불거질 때도 원주시민의 목소리를 담은 현수막이 수없이 게시됐다. 시민이나 지역 단체가 내거는 공익을 위한 현수막일지라도 최소한의 심의 과정을 거쳐서 스스로 원주의 수준을 폄훼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어중이떠중이가 모여서 35만이 된 것이 아니기에 이제는 인구 35만이라는 숫자를 내세울 게 아니라 양보다 질을 내세워야 할 때이다. 건강도시를 표방하며 중부내륙의 거점도시로 성장하려면 성숙한 시민의식이 선제조건이 되어야 한다. 차라리 인구 10만 시절이 그리워진다.

유창목 원인동 주민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