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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옥수수

봄에 작은 알갱이 하나를 심어 키가 자랄 때까지 거름 주고, 잡초 솎아내고, 멧돼지들의 공격도 막아내고 드디어 처음으로 찰옥수수를 출하하는 그날. 상자를 싣는 농부의 고단한 등이 장하다. 김정희 시인.소설가 문학박사l승인2020.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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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로부터 6월 장마는 꿔서라도 한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올해는 윤유월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오죽하겠나. 이 또한 긴 비와 수해에 대한 나름의 마음 다잡기다. 긴 비에는 남아나는 작물이 없다. 말복을 지나 처서 즈음이면 고추가 붉어지기 시작하는데 특히 고추는 비를 맞으면 필시 약을 쳐 줘야 한다. 안 그러면 썩는다. 올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장마 전 옥수수 수확을 대충 끝낸 것이다. 강원도는 옥수수가 주산물인 마을이 많다. 특히 내가 사는 신림은 옥수수를 많이 심는다.

 아침에 길을 나서 버스정류장까지 걸으면 키 크고 잘 생긴 옥수수들이 서걱대며 인사를 한다. 슬쩍 이파리를 건드리면 와삭거리며 달겨든다. 어찌 저 푸른 것들을 좁은 속으로 후려칠 것이냐. 어린 아이 치아 같은 작은 알갱이 익을 때까지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적이요, 하필이면 추수하기 전날 멧돼지들의 향연에 희생되어 안타까운 것이 바로 옥수수다.

 사람들은 돼지가 미련하다고 착각하는데 멧돼지들은 결코 어리숙하지 않다. 그들은 영민한 우두머리가 있고 그 뒤를 따라 몰려다닌다. 떼로 몰려다니는 멧돼지들은 옥수수가 잘 익을 때를 용하게 알고 밭을 습격한다. 옥수수 중에서도 가장 잘 익어 상품 가치가 높은 것들을 주로 공략한다.

 그리고는 딱 한 입을 베어 먹는다. 옥수수 대마다 다 건드리는데, 밭 바깥쪽에서는 전혀 표시가 나지 않는다. 밭 한가운데를 중심으로 완전히 초토화시키고 난 후 떠난다. 만약 그 밭에 아직 좋은 표적물이 남았다면 다음 날 다시 몰려와서 결국 그 밭을 완전히 끝낸다.

 한밤중에 집 뒤의 옥수수 밭에서 돼지 소리가 나면 그야말로 공포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영화용어로는 보이스오버라고 하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만 와그작 후르르 꿀꾸르 쿠르르하고 난다. 아침에 가보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쓰러진 옥수수대는 보기에도 안쓰럽지만 옥수수 열매 중 하나도 성한 것이 없기 때문에 결국 그 밭은 포기해야 한다.

 그 해의 옥수수 농사는 망친 것이다.
멕시코 남부 원주민이 만 년 전에 처음 경작했다는 옥수수는 벼, 밀과 함께 세계 3대 식량 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사료로 많이 사용하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는 중요한 식량으로 쓰인다. 알갱이 하나로 수 백 배의 수확을 내는 옥수수는 쓰임도 갖가지다. 수염은 잘 말려서 차로 마시고, 알갱이는 죽, 빵, 기름 등의 용도로 쓰인다.

 옥수수를 이용하여 바이오 연료를 생산해 내기도 한다. 옥수수를 분쇄해 발효시켜 에탄올로 바꾼 "옥수수 에탄올"은 10~20%를 휘발유와 섞어 사용하며, 가솔린 엔진과 호환이 되기 때문에 휘발유의 대체에너지로 하여 석유 의존도를 줄이자는 계획이 브라질과 미국 등지에서 이를 도입을 하고 있다.(위키백과)

 전국의 옥수수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강원도 찰옥수수, 그 찰진 알갱이 맛을 아는 사람들이 옥수수 익을 즈음 전화를 한다. 택배를 하는 차가 옥수수 밭 앞에 떡하니 서 있고, 하루 종일 상자에 테이핑하는 소리가 좍좍 나면 옥수수를 수확한다고 보면 된다.

 봄에 작은 알갱이 하나를 심어 키가 자랄 때까지 거름 주고, 잡초 솎아내고 멧돼지들의 공격도 막아내고 드디어 처음으로 강원도 찰옥수수를 출하하는 그 날, 햇볕에 그을린 얼굴로 웃으면서 상자를 싣는 농부의 고단한 등이 장하다. 눈물겹도록 위대하다.


김정희 시인.소설가 문학박사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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