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쾅쿵쾅!' 나무 계단을 급히 뛰어 내려가는 소리에 잠을 깬다. 억지로 눈 비비며 시계를 본다. 새벽 2시! 쿵쾅거리는 소리를 따라가는 또 한 명의 발소리가 들린다. 재빠르게 점퍼를 걸쳐 입고 나도 뒤따라 내려가 본다. 2시간 전에도 도오지(杜氏-일본 양조 장인)와 다나까 둘이 황급하게 뛰어 내려갔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이렇게 잠도 자지 않고 2시간 간격으로 왔다 갔다 하는 거지?' 궁금증을 뒤로한 채 앞서가는 다나까(田中)에게 묻는다. "다나까 씨, 나도 따라가도 돼?" 다나까(田中)가 답한다 "네, 궁금하면 들어 와서 봐도 돼요!" 하고 문을 열어 준다.

 일본 사케 제조 기술 연수차 몇 달 동안 양조장에서 같이 일해 왔지만 알지도 못했고 알 수도 없었던, 핵심 기술자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던 곳! 입국 제조방이다. 우리식으로 치면, 누룩 속에 있는 당화 효소를 고두밥에 배양하는 공간이다.

 앞서 계단을 내려간 두 명의 일본 기술자는 낮에는 매일 매일의 술을 만드는 일을 다른 사람과 똑같이 하고, 밤이면 쌀누룩이 일정 온도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2시간마다 자다 일어나서 온도를 내려주는 손작업들을 해왔던 것이다.

 밤잠을 잊고 명작을 만들어 내려는 이들의 장인정신의 실체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또한 이들이 인근에서 쌀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이라는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겨울에는 온전히 양조장에서 먹고 자면서 그들만의 술을 만들고 봄이 되면 다시 농민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크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효고현 시골마을, 크지는 않지만 300년 15대 가업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서 아름다움과 경건함 그 이상을 보았다.

 내가 사는 농촌에서 원주의 고유한 특산주를 만들어 보고자 떠났던 2007년 겨울의 사케주조 연수. 이를 마치고 돌아온 게 2008년 봄이니 어느덧 12년이 되었다. 그렇지만 나의 지역 술 만들기는 이런저런 핑계로 아직 내 집 문밖을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성과와 결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형편에 맞게 내 체력에 맞게 걸어왔을 뿐! 어렵사리 내 손으로 작업장을 만들었고, 장비들을 하나하나 사들였고, 농민들과 함께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주류제조면허를 받고, 판매허가와 영업 등록까지 마쳤다.

 그러나 마지막 문제는 디테일에 있었다. 만들 때마다 달라지는 품질을 일관되게 유지해야 하는 상품개선, 제품 브랜딩, 마케팅 등 넘어서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딱히 도움 받을 수 있는 곳도 마땅치 않았다.

 지난해 가을 추수를 마치고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이지' 하고 자기 최면을 걸며 팔자걸음을 걷고 있을 때, 바로 그때 원주지역 관광두레 PD와 인연이 되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좀처럼 성과를 낼 수 없었던 브랜딩 문제나, 일정한 품질의 지속적인 제품생산, 원가분석을 바탕으로 한 마케팅 및 사업계획 수립 등 말 그대로 맞춤형 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있는 일이 같은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나는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있는 일이 같은' 몇 안 되는 행운아 중에 한 명이 되었다.

 오늘도 나는 지난해 직접 농사지은 쌀로 고두밥을 하고, 누룩과 물을 넣어 항아리에 담고 있으니까! 정성스레 만든 술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었으니까! 지루했던 장마와 여름 무더위가 지나가고 선선한 바람이 아침저녁 불어올 무렵이면 우리의 술 만들기는 본격 시작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12월 한겨울에는 아마도 지역의 농민들 몇이 우리 양조장에 모여서 한 해 농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 지역만의 술, 원주의 술인 '12월의 양조장' 생막걸리와 생약주 제품들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이규옥 영농조합법인 쌀로술쌀로초 대표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