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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소망 면서기·소중한 쌀 두말

자식이 늘 당당하게 살길 바라셨던 아버지의 염원과 올곧은 길을 몸소 보여주신 스승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김광수 원주시 부시장l승인2020.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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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50여 년 전,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생 시절의 일이다. 하굣길 논두렁을 지나오는데 아버지께서 면사무소에서 나온듯한 젊은 남자와 말씀을 나누며 계속 머리를 조아리셨다. "오늘도 공부 잘했느냐." 두 분의 대화가 끝난 뒤 아버지께선 다정스레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이윽고 하신 말씀이 긴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귓전에 선하다. "너도 열심히 공부해서 면서기가 되려무나." 아버지는 소작농이셨다. 청각장애까지 있어 동네에서 업신여기고 무시당하면서 사셨던 아버지. 해마다 봄이면 가파른 보릿고개를 넘어갈 걱정에 이마 주름이 한결 깊어지셨다.

 매일 끼니를 근심하던 형편임에도 아버지는 나를 중학교에 보내셨다. 무리를 해서라도 나를 가르치신 까닭은 자식만이라도 궁핍한 생활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리라.

 중학생이 되어서도 종종 점심을 거르곤 했다. 어느 날 선생님이 귀한 쌀을 두 말이나 들고 찾아오셨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1학년 6반 담임선생님이셨다. 어린 마음에 어찌나 감사하던지. 스승의 따뜻한 배려 덕에 오래도록 든든했다. 쌀 두 말은 어떤 말로도 설명되지 않는 큰 배움으로 남아 내 삶의 자양분이 되었다. 그날의 일은 '면서기가 되라'는 아버지의 당부만큼이나 평생에 잊을 수 없었다.

 고향인 원주에 부시장으로 부임 후 오랫동안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찾지 못했던 선생님을 우연히 KBS '인간극장'에서 보게 되면서 수소문하여 마침내 선생님과 연락이 닿았다.

 선생님을 뵙기로 한 날, 모처 식당에서 서로 오래 전 모습만 기억하다보니 미처 알아보질 못해 얼마나 송구하던지. 40년이 넘는 긴 시간을 지나 사제 간 상봉은 그렇게 이뤄졌다. 식사를 마치고 걸어가시겠다는 선생님을 기어이 차로 댁까지 모셔 드렸다. "이렇게 잊지 않고 찾아주니 고맙구나.

 더구나 옛 제자가 부시장이 되어 고향에서 열심히 일한다고 하니 더 바랄 게 없네." 선생님의 말씀에 마음의 짐이 한결 가벼워졌다. 지금도 안부를 여쭈면 부시장이 된 옛 제자 잘되라고 열심히 기도하신다니 그저 고맙기만 하다.

 아버지의 바람과 은사님의 가르침을 나침반 삼아 지난 2년 동안 내 고향 원주를 위해 열심히 일 해왔다. 그동안 '정지뜰 호수공원' 조성을 위해 원주천을 국가하천으로 승격시켰고, 해양수산부의 '내륙어촌 재생사업'을 비롯한 정부 공모사업을 유치하는 등 국비 확보에도 전력을 기울였다.

 '제발 좀 그만 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서울과 세종을 오가며 정부청사를 드나들었다. 여러 번 고단한 순간을 겪었지만 그때마다 든든하게 받쳐 준 원창묵 시장님과 나를 믿고 함께 해준 직원들 덕분에 무임승차한 것은 아닌지 감사할 따름이다.

 원주시는 코로나19에 성공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성숙한 시민의식 덕분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일 계속되는 확진자 발생에 입맛도 없고 출근이 두려웠을 정도였던 걸 생각하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런 와중에 국립전문과학관 유치에 전력을 기울인 결과 1차 평가를 통과했다. 직접 발표를 맡아 얻어낸 결과라 더욱 기쁘다. 2차 현장실사 등을 잘 준비해서 최종 선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돌이켜보면 시민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었다. 그리고 자식이 늘 당당하게 살길 바라셨던 아버지의 염원과 올곧은 길을 몸소 보여주신 스승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이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 그동안 면과 시·군을 거쳐 도청, 중앙부처까지 여러 곳에서 열정을 쏟았지만 부시장으로서 내 고향 원주를 위해 일하고 있는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원창묵 시장님과 원주시민들의 신뢰와 격려를 마음에 새기며 남은 임기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김광수 원주시 부시장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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