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새통 무실점에 이달 내로 지역작가 전용코너가 생긴다. 북새통 무실점을 방문한 정광호 원주문협 회장(왼쪽)이 안철수 북새통 무실점 대표와 함께 지역작가 전용코너 운영과 관련,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원주문협과 협력 이달 말부터 본격 운영 예정

암울한 지역 출판시장 상황
충북 청주의 동네서점에 가면 '이웃의 삶 이웃의 이야기'란 이름의 지역 작가 책 코너가 따로 있다. 서점 한 구석이 아니라 '베스트셀러'만 차지할 수 있다는 서점 중앙 위치다. 책을 구독하기 위해 서점을 찾은 독자들의 손이 자연스럽게 갈 수밖에 없다.

충북지역 문단과 시민단체, 작은도서관 등이 지난 2017년부터 시작한 지역 출판 동네서점 살리기 운동 '상생충북'의 효과다. 자치단체, 의회, 교육청 등이 힘을 더하면서 지역 출판의 활로가 열린 사례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청주와 비교하면 원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출판 상황은 암담할 정도다. 전국적인 지명도가 있는 극소수를 제외하곤 작가가 자비로 200~300권 출판한 책을 지인 등에게 무료로 '자기 배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누가 시집이나 소설을 출판했다고 하면, 책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책 냈다면서 나는 한 권 안 줘"라는 말이 오히려 자연스러울 정도다. 원주에서 활동하는 A 시인은 "지인이 식당을 개업하면 팔아준다고 몰려가지만 정말 가까운 사람들도 책은 공짜로 받아가는 것을 당연시 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다고 내 돈을 내고 지역작가의 책을 구입하는 일도 그리 쉽지는 않다. 지역 서점에서조차 지역 작가의 책을 비치하는 경우가 드물어 온라인을 통하지 않고서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대부분의 지역 작가들은 자신이 직접 출판기념회를 개최하거나 일부 지역 언론 매체에서 실어주는 서평을 제외하고 변변히 자신의 작품을 알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셈이다.

때때로 "베스트셀러와 대형 출판사에 밀려 외면 받고 있는 지역 작가를 살려야한다"며, "작가, 출판사, 서점, 독자가 나서 지역 출판 시장 선순환 모델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 때뿐. 대부분 일회성에 그쳤다. 숱한 밤 고뇌의 결과물인 지역 작가의 출판이 그들만의 잔치나 자기만족으로 그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역 서점의 용기있는 도전
앞으로는 원주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지역 문인들의 책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새통 무실점(대표: 안철수)이 문인협회 원주지부(회장: 정광호)와 협력해 지역작가의 책을 소개하는 전용 코너를 설치, 운영하기로 했다.

▲ 정광호 원주문협 회장(왼쪽)이 안철수 북새통 무실점 대표와 지역작가 책 코너 개설을 합의하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그동안에도 일부 서점이 특정 작가의 북 콘서트를 개최하거나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작가의 책을 한시적으로 비치한 경우는 있었지만, 서점 내에 지역작가 코너를 만들어 상설 운영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역작가 전용코너 개설은 정광호 원주문협 회장의 제안에 15년째 원주에서 서점을 운영 중인 안철수 대표가 적극 화답한 결과다. 정 회장은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시중 서점에 비치하게 되면 전시효과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작가들이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첫 걸음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며 "수년 전부터 틈날 때마다 지역 서점들을 찾아다니며, 추진했는데 드디어 첫 결실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안철수(62) 북새통 무실점 대표는 "서점에 책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우리지역 문인들과 작품을 지역사회에 알리는 일 역시 당연한 일이자 지역 서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지역작가 코너가 활성화 되면 작가들이나 서점입장에서도 모두 좋은 일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원주문협은 일단 문협 회원들의 작품을 모아 진열대를 채우기로 하고, 현재 회원들을 대상으로 시집과 소설, 수필집 등을 모으고 있다. 우선 북새통 무실점에 작가별로 5권씩 공급하고, 다른 서점에도 의뢰해 전용코너를 넓혀갈 계획이다.

작품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기로 했다. 문협 내에서 기존 합평회 대신 제3자의 작품으로 상설 비평토론회를 개최하고 미 등단 작가를 대상으로 다양한 문학 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문협 회원 여부에 관계없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모든 작가들의 작품으로 대상을 확장하는 등 문호를 개방할 방침"이라고 밝힌 정 회장은 "지역 작가의 좋은 글을 지역 출판사가 책으로 만들고, 동네서점은 판매하는 건강한 구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오래부터 하고 있었다"면서 "당장 판매까지 이어질지 장담은 못하지만 시민과 독자들에게 우리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하나의 성과라고 생각하고 보다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