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유투브 인스타그램

김영준 도 해병전우회연합회장

"내가 받았기에 나도 돌려주는 것..." 서연남 시민기자l승인2020.05.25l수정2020.05.25 10:45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원주축협에서 근무한 22년은 봉사의 가치를 깨닫게 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무엇이 소중한지 배웠고 서로 돕는 기쁨도 알게 됐다. 또 한 번의 계기는 해병대 군 생활이다. 김영준(65) 강원도해병대전우회연합회장에게 해병대는 삶의 주춧돌과 다름없다. 인내, 성실을 가르쳐준 해병대는 전우회도 끈끈했다. 김 회장은 원주축협에 취업하자마자 해병대전우회 원주 모임을 시작했다.

 첫 봉사는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버스가 끊겨 집에 못 가는 고등학생을 위한 차량 봉사였다. 반곡동, 행구동, 지정면에 사는 학생들을 데려다 줬다. 차에서 내리며 고맙다는 인사를 할 때면 너무 뿌듯했다. 출근 시간 교차로 교통봉사와 여름철 간현유원지에서 인명구조 봉사하는 것도 해병대전우회의 몫이었다. 원주시 모든 축제에서 질서 유지와 안전을 지켜주는 현장에도 김 회장은 늘 앞장섰다.

 환갑을 넘긴 지금도 30대 못지않은 열정을 가진 김 회장에게 젊은 시절을 물었다. 처음 원주축협에 입사했을 때 월급은 3만원이었다고 한다. 1978년에는 원주축협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라 월급을 제때 못 받은 적도 많았다. 워낙 어렵다 보니 사무실 비품을 아껴 쓰는 것은 모든 직원들이 생활화돼 있었다.

 외부에서 온 각봉투를 뒤집어서 재사용했고 볼펜도 다 쓰면 볼펜심만 바꿔서 썼다. 지금도 김 회장은 종이 한 장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22년간 근무하며 몸에 익힌 근검절약은 김 회장 평생의 생활 습관이 됐다. 주변 사람들이 15년 된 스타렉스를 타고 다니는 김 회장을 보며 놀라는 일도 적지 않다. 그마저도 아내 명의다. 밥 먹을 때 밥 한 톨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먹는 것은 그의 철칙이다.

 꼼꼼하고 완벽한 성격 탓에 축협에서도 승승장구했다. 31살에 문막축협 지소장으로 발령받았고 40세에는 단계지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수신 최고 기록을 달성하며 원주축협이 전국 우수기관으로 선정되는 데 김 회장의 역할이 컸다. 직원들에게는 무섭지만 따뜻한 상사였다. 잘못한 일이 있을 때는 눈물이 나도록 혼냈지만, 직원 부모님이 아프다고 하면 한약을 챙겨 보내주는 마음 넉넉한 윗사람이었다. 그러다 1996년 지인의 소개로 용수골 가든을 인수했다. 개업식 할 때는 당시 국회의원은 물론 시장 등 정치인까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이 많았다.

 모든 것이 순탄할 것 같았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았다. 단계지점장으로 있었을 때 직원의 실수로 금융사고가 났다. 책임을 져야 했다. 2개월간 원주교도소에 있다 나오면서 김 회장은 축협을 떠났다. 1억7천만 원의 퇴직금도 한 푼 못 받고 그만뒀다. 김 회장은 "진짜 어려운 일을 겪고 보니 내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퇴직하고 나온 뒤에 정말 많은 사람이 도와줬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264㎡로 시작한 용수골가든은 현재 6천600㎡로 확장할 정도로 많은 손님이 찾았다. 친절과 맛 , 맑은 물은 손님들을 다시 찾아오게 했다. 용수골가든이 자리를 잡으면서 김 회장은 판부면 백운산한우리회를 조직했다. 순수 민간단체 봉사조직으로는 원주 최초라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주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마을을 위해서 같이 일해보자고 설득했다. 60여 명의 회원이 모였고 매달 모여 마을 봉사에 대해 의논했다.

 5월이 되면 마을 노인들을 초대해 경로잔치를 했고 저소득층을 위한 쌀 지원을 했다. 혼자 사는 노인 집을 찾아가 집을 수리해 주는 봉사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새집으로 지어주다시피 한 곳도 많고 전문적으로 건축을 배운 회원들이 아니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배우면서 하느라 고생했던 기억도 있다. 원주시재향군인회장을 지낼 때는 전국 최초로 6.25참전 선배들을 위한 생계비 지원을 위한 모금 활동을 벌여 10여 명에게 매달 5만원씩 도움을 줬다.

 지금은 18명으로 늘었다. 해병대전우회관도 전국 최초로 건립했는데 그때도 1천만 원의 후원금을 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500만 원을 지역사회에 후원했다.

 "나도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힘들 때 도와준 사람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은혜는 갚아야 한다. 다른 건 다 잊어도 고마운 사람은 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는 김 회장. 그는 요즘도 새벽 6시면 일어나 텃밭에 나가 채소 농사로 하루를 시작한다.

 올 3월 태어난 쌍둥이 손자를 보는 것이 요즘 가장 큰 행복이기도 하다는 김 회장은 원주검찰청 범죄 예방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정책자문위원, 원주시 사회단체협의회장, 흥업지구대 생활안전협의회장, 북부지방산림청 숲사랑 협의회장 등 지역사회 곳곳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현재 영서고등학교총동문회장, 원주시족구협회 고문, 원주시 촛불장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서연남 시민기자  wonjutoday@hanmail.net
<저작권자 © 원주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연남 시민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강원도 원주시 서원대로 158 5층(단계동)  |   등록연월일 : 2012년 04월 09일  |  등록번호: 강원 아 00125  |  사업자등록번호: 224-81-11892
발행인 : 심형규  |  편집인 : 오원집  |  대표전화 : 033)744-7114  |  팩스 : 033)747-9914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원민
Copyright © 2020 원주투데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