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 에티오피아는 사상 초유의 기근으로 100만 명이 사망했다. 에티오피아의 참상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마이클 잭슨을 비롯한 팝 가수들이 'We Are the World' 자선 싱글 앨범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런데 실제 에티오피아의 식량 생산량은 역대 두 번째로 많았다고 한다.

 반면, 같은 시기에 다른 아프리카 국가인 보츠와나는 가뭄으로 식량이 1/4로 감소했으나 아사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해하기 힘든 이 반전에는 정치적 요인이 작용했다. 에티오피아는 독재 체제하에 있었고 보츠와나는 민주적 정부를 가지고 있었다.

 기근이라는 같은 외부 요인으로 인해 생사의 갈림길을 결정한 것은 자원의 배분과 공존의 정치였다. 정치 행위는 단순히 잘난 사람을 뽑는 것 이상이다. 우리 삶의 질을 좌우하고 꼭 전쟁 같은 상황이 아니더라도 특정 상황에서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병(코로나19)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4월 7일 기준으로 전세계 총 214개국에서 약 135만 명에 달하는 확진자와 7만5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코로나19 감염자의 가파른 상승 곡선이 둔화하였지만, 그 파괴력은 여전히 위협적이고 아직 그 싸움의 끝을 알 수 없다.

 의료 체계가 붕괴 직전인 나라도 다수이다. 확진자와 위중한 환자에 대한 치료가 포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심지어 사망자의 시신 수습도 제대로 되지 않아 길거리에 버려두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코로나 19 사태는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소위 선진국에서도 일찍이 생필품 사재기와 봉쇄로 인한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사례는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대대적인 검역 시행, 조기 진단 시약 개발을 가능하게 했던 한발 앞선 준비 능력, 드라이브 스루와 같은 창의성, 방역 당국과 의료진의 헌신,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자발적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성숙한 시민의식 등은 코로나19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기여했다. 현재 120여 국가가 코로나19와 관련해 우리나라에 다양한 형태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위기의 순간에 한국은 어느덧 모범 사례가 되었다.

 다수의 외국 언론에서 주목한 또 다른 측면은 한국의 성숙한 민주주의이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민의 안전에 최우선을 둔 대응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투명성은 민주주의 성숙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평가이다. 일본의 아베 정권은 올림픽 개최 지장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우려해 코로나 19 검사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며 사실상 진실의 은폐에 급급했다.

 초기 중국 비난에 집중하고 마스크가 필요 없다던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에서는 이미 세계 최대 코로나 19 확진자 수를 기록하고 있다. 다수의 독재국가에서는 지배층이 외국 의료 서비스에 의존하며 자국의 의료 인프라에 투자를 게을리 한 탓으로 더욱 열악한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자가격리 통제를 위해 동원한 군의 강경 대응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곳도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보건 위기이지만 정치적 문제로 악화한 사례들이다.

 이런 점에서 코로나19 감염병은 정치의 문제이다.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개별 국가 차원을 넘어 국가 간 협력이 필수적 요건이다. 정보를 공유하고 노하우를 전수하고 관련 물품을 지원하여 세계적 수준의 대응이 있을 때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다. 자국의 문을 걸어 잠근다고해서 안전할 수 없음이 이번 사태를 통해 분명해졌다. 위기의 순간에 국가가 생존하는 것은 자국 이익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연대하며 공존하는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방지뿐만 아니라 감염병에 따른 경제적 여파 대응에서도 공존의 정치가 요구된다. 생산과 소비과정에서 취약한 연결고리가 끊어진다면 총체적인 경제적 위기로 발전할 수 있다. 경제적 위기에 사회적 취약층이 가장 먼저 피해를 보게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 모두가 영향을 받을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서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사회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차별과 배제가 아닌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가 재난 기본소득 도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이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고 적절한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결국 정치의 문제로 귀결된다. 총선을 앞두고 코로나19 사태를 정쟁의 소재로 이용하거나 당리당략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총선은 위기의 순간에 정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한 차원 성숙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공존의 정치를 실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김형종 연세대(원주) 국제관계학과 교수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