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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도 봄꽃은 핀다

재난 중이라도 노동의 형식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 노동 자체가 멈추지 않듯, 예술은 살아서 움직여야 할 것이다. 이탈리아 작은 도시의 합창이 우리시대에도 예술이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원영오 연출가.극단노뜰 대표l승인2020.03.23l수정2020.03.2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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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작은 스푼으로 냄비 바닥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 다음 프라이팬을 두드리고, 신이 난 아이는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두드린다.

 또 다른 이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하고 청년은 기타를 치며 여인은 철제 난간을 두드린다. 어떤 이가 그 소리에 맞춰 흥얼거리며 박자를 탄다. 래퍼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주자도 아닌 그들은 하나, 둘 리듬을 타고 선율을 입히며 박자를 맞춰간다.

 또 다른 이는 응원할 때 사용했을 법한 도구로 소리를 내고 누군가는 이제 노래를 부른다. 지나가는 이도 박자에 맞춰 노래를 하면 윗 층 베란다의 노부부는 손뼉을 쳐 동참한다.

 마치 유럽의 어느 축제 기간 동안 여기저기서 들리는 축제의 환호성 같은 이 장면은 실은 코로나19로 도시 전체가 격리된 이탈리아의 어느 도시 이야기다. 베르디로 유명한 오페라의 나라여서 그럴 수도 있다. 진도에 가면 논두렁에서 일하던 농부도 소리 한 자락 명창 수준으로 한다는 것처럼, 이탈리아에서는 오페라 곡 정도는 누구나 익숙하게 잘 불러서 일수도 있다.

 영화 타아타닉의 명장면 가운데 하나는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누군가를 위해 연주를 시작하는 장면이다. 그들은 타인들이 죽어가거나, 죽음을 앞두거나, 두려움에 울부짖을 때도, 자리를 지키며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한다.

 현대사회에서 예술의 공공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모델과 미국식 신자유주의 모델, 러시아식 사회주의 모델을 들어가며 답을 하지만 결국, 예술의 공공적 가치에 대한 이해는 예술에 대한 개인의 호불호에 의해 쉽게 왜곡되기도 한다.

 심지어 중앙정부의 예술정책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의 예술정책 또한 공공성의 기준이 저마다 달라 권력자의 애호에 의해 판가름 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피난 갈 곳 조차 없는 영국인들을 위해 위험을 마다않고 공연을 지속한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이 있다. 그들은 패전의 상처를 입고 있는 영국인의 자존심을 위해 시민들을 찾아다니며 작고 허름한 곳도 마다하지 않고 셰익스피어의 명작들을 상연했다. 현재 그들은 연극의 사회적 가치 혹은 연극의 공공적 가치를 대표하는 극단으로서 존경을 받고 있다.

 70, 80년대 페루 내전으로 좌우의 극심한 대립이 한창인 시절 페루 극단 '콰트로 타블라스'는 내전지역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다니며 아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치고 원주민과 함께 공연을 올렸다. 그들의 전통은 여성, 원주민, 소수자 등 사회 비주류 집단과의 강한 커뮤니티 활동으로 지속되어 지금껏 라틴 아메리카 연극계의 리더 그룹으로서 존경받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마비 현상이 향후 더 짧은 주기로 반복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있다. 세계적 재난이 좀 더 일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질병관리본부는 재난의 장기화를  대비한 우리 사회 전반의 변화와 준비를 강조했다.

 재난 중이라도 노동의 형식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 노동 자체가 멈추지 않듯, 예술은 살아서 움직여야 할 것이다. 이탈리아 작은 도시의 합창이, 2차대전 중 영국의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이, 80년대 페루 내전 속에서의 연극이, 우리시대에도 예술이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재난자본주의 혹은 포스트 휴머니즘 시대에 대비한 문화정책이 필요하다. 지금이라도 재난의 일상화를 대비해, 예술의 공적 가치 수립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본다.

 한일 양국의 배우 20여 명이 지난달부터 문막읍 후용리에 모여 공연을 준비 중이다. 양국 간 사실상의 입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시점에서 여러 논의가 진행되었지만 전쟁 중에도 공연을 멈추지 않았던 연극 선구자들의 노력을 기억하며 결국 작업을 지속하기로 결정하였다. 관객과의 만남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하지만, 재난 상황에서 예술활동을 미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코로나19에도 봄꽃은 피고야 만다.


원영오 연출가.극단노뜰 대표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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