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집을 짓고 사는 새들은 집을 만들고 알을 안을 때부터 벌레를 물어다 먹이고 키우는데 이르기까지 암컷과 수컷이 함께 온갖 애를 쓰지만, 새끼가 커서 제대로 날고 쪼아 먹게 되면 아비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어미조차 서로 잊어버린다. (중략) 세상에서 까마귀를 반포조(反哺鳥-늙은 어미에게 먹을 것을 물어다 주는 새)라고 이야기들 한다.

 나는 일찍이 징험해 보니, 까치와 참새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 있으나 다만, 많이 보질 못했다." 이 글은 이익(李瀷 1681~1764 조선 시대 실학자)의 「성호사설(星湖僿說)」 만물 편에 나오는 글이다.

 요즘 일부 세태를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 도시화가 가속되면서 우리의 삶이 자연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고, 그 속에 사는 동물을 볼 수 없게 되면서 지금도 여전히 사는 많은 생명들의 이름이 하나둘 잊히고 있어서다. 까마귀나 까치, 참새가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걸 우리가 잊고 있듯이, 선조들이 친근하게 예전에 부르던 동물에 대한 재미있는 우리 토박이말을 소개하려고 한다.

 먼저, 암수 이름이 다른 것부터 소개한다. 사람의 수컷은 남자고 암컷은 여자라 한다. 물론 사람은 이것 말고도 할아버지·할머니, 아저씨·아주머니, 처녀·총각, 소녀·소년 등 많다. 그러면 동물들은 어떨까? 원주시의 시조(市鳥)인 꿩의 수컷은 장끼, 암컷은 까투리로 많이 알려졌다.

 새매는 난추니(수) 익더귀(암), 방아깨비는 딱개비(수) 왕치(암), 민어는 수치(수) 암치(암), 물고기는 이리박이(수) 알배기(암), 뱅어는 슬치(수) 알치(암), 사슴이나 노루의 암컷은 느렁이, 수컷은? 사전을 아무리 뒤져도 안 나온다. 꿀벌의 암컷은 수여리라 하고 수컷은 그냥 수벌이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많이 볼 수 있는 소는 사람에게 친숙한 동물인 만큼 성장하면서 붙여진 이름이 꽤 많다. 뱃속에 든 새끼나 갓 나은 송아지는 송치, 뿔날만한 나이가 되면 동부레기, 길들이지 않은 소는 부룩송아지, 아직 코뚜레를 하지 않은 소를 목매기송아지, 다 자란 수소는 황소, 남쪽 지방에서 나는 소를 길치, 성질이 몹시 사나운 황소는 찌러기, 달구지를 끄는 큰 소는 차부소라 한다. 그런데 소가 우는 소리를 우리는 '음매'라고 한다. 송아지는 뭐라고 할까? 사전 한번 찾아보시기 바란다.

 어미와 다르게 불리는 새끼들의 이름은 어떨까? 개의 새끼는 강아지, 말의 새끼는 망아지, 소의 새끼는 송아지, 우리 귀에 그래도 익숙한 이름이다. 곧 봄이 되면 알을 깨고 나오게 될 병아리는 닭의 새끼 이름이고, 이제 경칩이 지났으니 개구리가 나와 낳은 새끼는 올챙이라 한다. 그래도 우리가 잘 쓰는 이름들이다. 동물의 왕국이나 동물원에 가야 보는 곰의 새끼는 뭐라 부를까? 능소니라 한다. 범의 새끼는 개호주, 우리 원주시의 시조인 꿩의 새끼는 뭐라 부를까? 꺼병이다. 조금 크면 어미 꿩을 줄레줄레 따라다녀서인가 줄레라 한다.

 이제 눈이 녹아 흐르면 계곡물이 활기차면 물속의 고기들도 바빠진다. 물고기들도 새끼 이름을 붙인 경우가 많다. 우리 강원도에 많이 사는 천연기념물인 열목어의 새끼는 팽팽이, 강원도 고기라 할 만큼 동해에서 많이 잡히는 명태 새끼는 노가리다.

 고등어 새끼는 고도리, 가오리는 간자미, 농어는 껄떼기, 잉어는 발강이, 숭어 새끼는 모쟁이, 모롱이, 동어 등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가을이면 집 나갈 며느리도 붙잡는다"는 전어는 즐겨 먹어서인가 이름도 꽤 여럿이다. 아주 작은 것은 새살치, 조금 더 크면 전어사리, 더 커서 사람의 사춘기 무렵의 전어는 엇사리라 부른다. 방어 새끼도 아주 작은 것은 떡가래미, 조금 더 큰 것을 마래미라 한다. 갈치 새끼는 풀치다.

 이제 다시 뭍으로 가보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심지어 해발 1288ｍ 치악산 정상에 가도 만나는 지겨운 파리, 그 파리의 애벌레를 구더기라 부르고, 또, 하나 여름철 혐오 곤충 모기 애벌레는 장구벌레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면 잠자리 애벌레는? 매미 애벌레는? 얼른 생각이 안 난다. 모기나 파리처럼 귀찮게 하지 않아 관심이 덜 가는 경우라 그렇다. 매미의 애벌레는 굼뱅이고, 잠자리 애벌레는 학배기 또는 물송치라 한다. '개미지옥'이라 부르는 애벌레는 개미들에게 공포의 대상인 개미귀신은 명주잠자리의 애벌레다. 텃밭 채소의 골치덩어리 오이 돼지 벌레의 애벌레는 고자리라 한다.

 까마귀가 부모를 공양하는 반포조(反哺鳥)라는 걸 잊고 있듯이 우리들의 삶이 도시화 되면서 자연스레 멀어지게 된 정겨운 이름들! 연로하신 어른들의 희미한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우리 토박이말들이 점점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있음이 안타까워, 장승욱 선생이 지은 「재미나는 우리말 도사리」에서 일부 발췌해 소개했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선조들이 그랬듯 슬기롭게 극복하자.

이동진 전 원주역사박물관장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