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지명 연구 30년…원주지명유래·원주지명총람 집필

최근 원주역사박물관이 발간한 '원주지명총람'은 원주의 각 지명과 유래, 위치와 정보, 유래와 풀이 등을 담은 지명사전이다. 1999년 발간된 '원주지명유래' 이후 20여 년 만의 결실이다. 원주지명총람은 옛 지리지에 수록된 지명을 모두 발굴해 수록하고 현 위치를 고증해 반영했다. 또 누락된 현지 고유 지명을 최대한 채집해 지명의 위치와 정보 등을 보다 상세하게 기술했다.

상·중·하 모두 3권으로 구성, 지난 연말 발간된 상(上)권에는 원주의 역사와 지리, 행정 지명, 면(面)·리(里) 변천사와 함께 17개 법정동과 문막읍 지명 및 지역유래를 담았다. 최근에는 면 지역 지명과 지역 유래가 담긴 중(中)권이 발간됐으며, 내달에는 하(下)권을 세상에 내놓을 예정이다.

'원주지명총람' 발간 소식에 도내 지자체들도 높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지역 역사와 문화 정립을 위한 '춘천학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지역사 연구에 있어 도내에서 가장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자부해 온 춘천시는 원주시가 원주지명총람 발간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에 서둘러 '춘천의 지명유래 찾기' 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명 유래를 조사해 기록하는 것은 지명이 가진 문화사적 가치를 발굴해 보존하는 일이다. 지명 속에는 지역의 내력과 곡절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옛 문헌 자료를 뒤지거나 반복적으로 현장을 찾아 지역 주민들의 기억을 채록하는 수고 외에도 주변 지형과 역사를 꿰고 있어야 하며, 고대 국어에도 능통해야 한다. 그래서 지명연구를 '종합 인문과학'이라 부른다.

1999년 발간된 '원주지명유래'와 지난해부터 순차적으로 발간 중인 '원주지명총람' 연구는 김은철(61) 상지대 한국어문학과 교수가 맡았다. 김 교수는 원주시가 지난해 발간한 '원주 지역어 조사 연구'에도 같은 과 장향실 교수와 송인성 상명대 계당교양교육원 초빙교수,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권기현 씨 등과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지금은 구미시로 불리는 경북 선산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공부한 김 교수가 원주와 연을 맺은 것은 1988년 상지대에 전임강사로 임용되면서부터다. 당시 지도교수마저 원주를 최전방 도시로 인식하고 "여의치 않으면 바로 내려오라"고 당부했을 만큼 군사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했을 무렵이다.

학창시절에 찾은 경주시를 가장 동경하는 도시로 꼽았을 만큼 지역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깊었던 김 교수가 원주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일도 '원주향토지'를 통해 원주를 공부하는 일이었다. 당시 함께 교류한 이들이 박종수 현 원주역사박물관장과 '조선시대 원주 거주 사마시 급제자와 양반사회'란 논문을 발표하기도 한 장영민 상지대 교수, 경수현 전 원주YMCA 청소년문화의집 관장, 유종호 전 도의원 등이다.

특히 영월군 근무당시 도내 지자체 최초의 지명사전을 발간한 경험으로 '원주지명유래'와 '원주지명총람' 발간 사업을 기획한 박종수 역사박물관장과는 여러 면에서 생각이 통했다.

옛 지명에 관심을 갖고 조사를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향토지를 뒤지고 원주 구석구석을 직접 발로 찾아다니며, 지명연구에 매달렸다. 북쪽 귀래부터 남쪽 호저까지 원주 내에서 김 교수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그 과정에서 구룡폭포 위에 있었다고 전해지던 대성암 터를 발견하는 수확도 거뒀다. 박종수 역사박물관장의 말을 빌면 '원주 사람도 잊고 있던 땅이름을 찾아 산을 넘고 깊은 골짜기를 드나들면서 거둔 결실'이다.

김 교수는 "한 마을마다 2~3회씩은 방문하다보니 지금은 마을 어르신들이 먼저 알아보신다"며 "우리 아이들이 우리 집 승용차가 불쌍하다고 할 만큼 정말 원주 구석구석까지 많은 곳을 다닌 것 같다"고 말했다.

원주지명유래 집필 후 20년 만에 다시 원주지명총람 연구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원주지명유래가 발간된 뒤 일제강점기 기록인 '조선지지자료'의 존재를 뒤늦게 알게 된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다시 신발 끈을 고쳐 묶고 1911년 자료인 조선지지자료와 1967년 발간된 한국지명총람에 등재된 기록을 현재 지명과 하나하나 비교하며 각 지명의 어원을 추적했다.

김 교수는 "조선지지자료와 한국지명총람, 원주지명총람은 50여 년의 시차를 두고 현지 지명을 기록한 셈이어서 원주 지명의 변천과정을 한 눈에 보여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지명에는 조상들의 세계관과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묻혀진 지명을 발굴해 기록하는 일은 지역의 소중한 정신유산을 보존하는 일"이라고 밝힌 김 교수는 "원주가 고향은 아니지만 지난 30여 년 터 잡고 아이들 키우며 잘 살아 온 이 땅에 이제야 조금은 빚을 갚은 것 같다"고 소감을 대신했다.

김 교수는 "중앙에 비해 기록인 부족한 지방에서 지역학 연구는 중요한 과제"라면서 "원주도 하루빨리 원주학연구소를 설립해 역사, 문화, 지리 등 원주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수집, 연구하고 지역발전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기초자료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