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혁 회장

농가 설득해 혈통·사료·사양 통일…장학사업도 앞장

'희망농업, 꿈의농촌, 행복농민…걸림돌을 디딤돌로' 이상혁(57) 품목농업인연구회 원주시연합회장의 명함에 쓰인 글이다.

그는 농업에 희망이 있어야 농촌도, 농업인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나가야 우리 농촌에 활짝 웃는 날이 올 것이라 믿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회장은 농사를 시작한 30여 년 동안 끊임없이 농업인 권리 증진에 힘써왔다. 지금은 품목농업인연구회 원주시연합회장, 치악산한우개량연구회장 등을 맡으며 농업인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사실 그는 품목농업인 원주시연합회장보다 치악산한우브랜드 육성단장으로 유명하다. 사료와 사육, 종자를 통일시켜 전국 굴지의 한우 브랜드를 탄생시키는 데 이바지했기 때문. 지난해까지 치악산한우는 전국 소비자시민모임이 인증한 우수축산물 브랜드에 8년 연속 이름을 올렸다. 이 같은 성과의 뒷면에는 지역 축산업에 대한 변화를 갈망했던 이 회장의 노력이 주효했다. 

농사를 시작한 것은 가계의 영향이 컸다. 조부는 일평생 농사꾼으로 살았다. 부친도 공직생활 후 농사에 전념했다. 그도 농사짓고 살면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려서 일찌감치 농사로 진로를 정했고 커가면서 꿈도 키워나갔다. 젊었을 땐 문막 평야를 바라보며 '이 모든 곳에 벼를 심어야지'라고 마음먹기도 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땅에 벼농사와 밭농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농사를 해보니 생각보다 힘들고 수입도 적었다. 이보다는 소를 키우는 것이 가계에 보탬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벼농사로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소 10마리를 사들인 것도 이 때문이었다. 1988년 당시 암소 한 마리가 280만 원이었으니 당시에 엄청난 투자를 감행했다. 

일이 어느 정도 자리 잡힐 즈음 이웃 농가들의 어려움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나서서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농가 스스로 포기하고 주저앉는 모습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초대 치악산한우 브랜드 육성사업단장을 맡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회장은 "횡성에선 한우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치르는데 원주에선 아무리 잘 키워도 인정해주지 않아 속상했다"며 "원주 축산농들도 횡성한우와 견줄만한 한우브랜드를 만들자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말했다. 

그렇게 결성된 것이 치악산한우 브랜드육성사업단이었다. 그는 단장직을 수락한 후 혈통·사료·사양 관리에 치중했다. 1997년 980여 개에 달하던 한우농가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치악산한우 브랜드 육성에 동참해 달라고 설득했다. 이 회장은 "당시 치악산한우 브랜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퍼져있어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됐다"며 "그런데 개중에는 관행적으로 하던 사육법을 고수해 설득하는 작업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치악산한우 브랜드육성사업은 지역 청소년에게 치악산한우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만드는 계기도 만들었다. 당시 학교급식으로 나오는 육류가 대부분 외국산이어서 축산농들의 안타까움은 컸다. 그래서 이 회장은 김기열 당시 시장과 이봉수 교육장의 협조를 구해 원주 전체학교에 치악산한우를 공급하게 했다. 청소년들이 치악산한우에 입맛을 들여 지역 축산농가를 돕길 바라는 마음은  원주시, 교육청 모두 한결같았다. 

소를 키우면서 항상 즐거운 일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2010년 겨울부터 2011년 봄까지 불어 닥친 구제역은 자식을 떠나보내는 아픔을 선사했다. 이 회장도 애지중지 키우던 소 80여 마리를 땅에 묻었다. 누군가는 "솟값도 안 좋은데 정부가 보상해주니 오히려 더 잘된 일"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자식을 땅에 묻고 돈 받으면 무슨 소용"이라고 토로하는 농가가 훨씬 많았다. 구제역은 원주 축산업을 붕괴 직전까지 몰아붙일 정도로 매서웠다. 이 회장도 새로 송아지를 들이고 성체로 키우기까지 몸고생,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당시 축산농들은 구제역으로 인한 정신적·경제적 압박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렇게 힘들어도 장학사업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치악산한우 브랜드 명품화 공로로 2008년 새농민상을 받았다. 이때 시상금으로 받은 500만 원으로 송아지 2마리를 샀다. 이 회장은 송아지를 키우며 번 수익금을 북원여고와 원고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이후에는 촛불장학회 호저면 이사로 활동하며 매년 100만 원씩 출자했다. 

그는 "사실 장학금을 받는 사람은 그 고마움이 얼마 가지 않지만, 주는 사람의 만족감은 평생 간다"며 "다 내가 좋자고 벌인 일"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산현초등학교 운영위원회 위원장, 호저중학교 운영위원장을 맡으며 미래 주역들을 위한 장학사업을 추진했다. 원주시는 지역농업 발전과 장학사업에 헌신한 이 회장에게 지난해 자랑스런 농업인상을 주었다. 이 회장은 "새농민상과 원주시 자랑스런 농업인상은 평생의 기억으로 남을 일"이라고 말했다. 

지역농업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지만, 아내 이점숙 씨에겐 늘 미안한 마음뿐이다. 27살에 시집와 시골에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기 때문. 이상혁 회장은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난 돈 가진 것도 없고 죽을 때까지 농사만 지을 거니깐 그냥 따라오면 된다'고 말했다"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지금까지 나를 믿고 묵묵히 따라와 준 아내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최다니엘 기자  nice4s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