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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되돌아보며 또 다른 미래 설계

원주영상미디어센터·가톨릭종합복지관 어르신 자서전 수업 수강생 자서전 모음2 원주투데이l승인2020.01.06l수정2020.01.0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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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영상미디어센터와 원주가톨릭종합복지관이 '내 인생, 우리의 역사'를 타이틀로 지난 8월부터 5개월간 진행한 '어르신 자서전 수업' 수료자 여섯 분의 글을 2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본문 글은 이들의 자서전 모음집인 '지금, 즐거운 인생'에서 발췌, 재구성했습니다.  <편집자 주>

시련으로 더 단단해진 인생

이향숙(66, 명륜동)

1954년 2월 22일 태어난 여자아이. 이쁘지도 않고 얼굴만 커다란 아이. 목행리 남한강 물처럼 맑고 어디에서나 향기로운 아이가 되라고 향숙이라 지으셨단다.

오래 이어진 시련

고등학교는 포기하고 버스회사에 취직해 3개월 다니다 서울로 상경했다. 공부해야 한다고 야간 전수학교에 입학했다. 낮에는 심부름하는 소사 겸 경리로 일하고 밤엔 학교에 갔다.

퇴계로에서 왕십리로 가서 공부를 끝내고 돈암동까지 오면 자정이 다 되었다. 통행 금지 시간이 다가오면 파출소에 가서 도장을 받아 집에 갔다. 새벽에 일어나 집 청소도 하고 부엌일도 돕는 것이 나의 일이다. 아침 식사를 한 후, 사장님인 주인아저씨와 함께 출근하고 사무실에서는 잔심부름을 했다.

1977년 10월 27일, 아이가 태어났다. 그런데 웬일인지 아이의 입 모양이 이상하게 보였다. 토순(구순구개열)이란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때 내 마음에서 큰 울림이 울렸다. 어떤 방법으로라도 이 아이를 치료하리라. 고쳐주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에 부엌으로 나가서 따뜻한 물을 세숫대야에 담아 방으로 들어와 아이를 씻기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아이를 데리고 왔다. 인중을 집게 같은 거로 묶어두고, 울리지 말란다. 젖을 먹일 수도, 우유병을 빨아 먹을 수도 없다. 분유를 타서 스포이트로 한 방울씩 입에 넣어주었다. 조금만 많아도 사레에 걸리고, 토 조절이 힘들었다. 젖병에 우유를 넣어 입에 대고 흔들어 방울방울 먹이는데 아이가 젖병을 혀로 빨아 당긴다. 성공이다! 환성이 나왔다. 이후 5번의 수술, 초등학교 5학년부터 교정, 대학 입학 때에도 잇몸 수술, 치아 임플란트··· 고생은 이어졌다.

위탁 부모·이주 여성 돕기 등 봉사활동

장사를 그만두고 나만의 시간이 조금 허용되었다. 복지관, 장애아시설, 독거노인 무료급식소, 양로원 등에 가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결혼한 후 가정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외국인 여성들을 상담해주기도 했다.

봉사 활동을 하던 중, 결손가정 아이가 있어 위탁 부모를 8년 정도 했다. 주변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분이 남은 채소를, 두부 공장에서 매일 두부 한 판을, 정육점을 운영하는 분이 작업 중에 나오는 자투리 고기 서너 근씩을 챙겨주어 훌륭한 반찬을 만들 수 있었다. 세상이 삭막하다 해도 사랑을 나누려는 사람들, 사랑을 받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가 되는 것 같다.

사랑하는 향숙이에게

세상 다 잃은 듯 학력에 그렇게 목매더니 그래도 이렇게 잘 살 수 있었잖아. 네 성격에 맘껏 배웠다면 얼마나 거만하고 남을 업신여기며 살았을까? 재물도 많이 가졌다면 지키느라 힘들고 지쳤을 거야. 없는 데서 하나씩 쌓아 가며 그때그때 흐뭇하고 즐거웠잖니.

그 많은 빚을 다 갚고 집 장만하고 차도 구매하고 두 아이 대학 졸업시키고 큰아이 병원비, 치료비를 누구의 도움 없이 너의 힘으로 다 해결했잖아. 시어머니 잘 모셨다고 시누이들에게도 찬사를 들었잖니. 친정엄마도 잘 모셔 드리면 동생들도 고마워하고 엄마가 바라는 대로 형제간 우애도 돈독해지리라 믿는다.

주위에는 너의 본심을 알아주는 친구가 4, 5명이나 되잖아. 거기다 남편과 아이들도 너를 잘 알고 이해하고 사랑한단다. 칠십을 바라보는 너를 뒤돌아보며 그리 슬프지만은 않잖아.

이제 남은 시간, 너를 위해 네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하며 인생을 즐기렴. 그동안 수고 많았다. 사랑한다.


사랑하는 것은 결심이다

유재건(80, 문막읍)

세상에는 감추거나 참을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가난'이고, 둘째는 '재채기'이고, 셋째는 '사랑'이란다.

50년 전의 프러포즈

1971년 11월 20일, 일요일이었다. 나는 숙을 데리고 수유리 쪽 북한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아카데미하우스로 갔다. 그곳은 고급 호텔로, 유명한 레스토랑 <북악>이 있다. 식당에 들어서니 '만토바니 악단'이 연주한 경음악이 분위기를 감싸고 있었다. '웰던'으로 구워진 티본 스테이크의 마지막 살 점을 입에 넣으니 금방 녹아 넘어갔다. 나이프와 포크를 접시에 나란히 놓고 난 후,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숙을 보며 말했다. "혜숙아, 우리 결혼하자!" 숙은 말없이 나를 쳐다보며 미소만 지었다. 건의 역사적인 프러포즈는 이렇게 연출되었다.

1971년 12월 27일 토요일 낮 12시, 서울 명동성당. 신랑 유재건은 발걸음이 바닥 카펫에 닿지도 않는 채로 제대 앞으로 날아갔다. 사회자의 멘트 '신부 입장'이 떨어지자 파이프 오르간의 웨딩마치에 따라 신부 숙은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사뿐히 걸었다.

유유자적 함께하는 노년

2019년 현재, 나와 아내는 인생의 유년을 거쳐 노년기를 보내고 있다. 아내의 장점은 사람을 보는 눈과 타고난 미적 감각이 있다는 것이다. 아내는 요리를 잘한다. 맛도 있게 한다. 집에서 담그는 김치는 김장김치, 보쌈김치, 총각김치, 오이소박이, 겨울 동치미 등 종류대로 맛깔을 낸다.

아내는 정이 많다. 타인을 배려하는 측은지심도 깊다. 아내는 여전히 잘 웃는다. 아내는 누구를 향해 욕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화가 난 경우에도 말로 푼다.
가을 하늘에 핀 코스모스의 청초함과 하늘거리는 자태를 닮은 젊은 날의 아내도 이제는 칠순에 들어 머리카락 정상엔 흰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갸름했던 팔뚝도 살이 붙어 두툼한 어깨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건강한 육체로 전문 주부로서 요리를 하고 있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우리 부부는 노년에도 둘이서 쇼핑을 즐긴다. 쇼핑이라야 동네 주변에 있는 슈퍼마켓에 가서 식자재를 사는 게 전부다. 난 언제나 아내가 전세 낸 전용 기사이고 포터다. 우리의 쇼핑 역사는 결혼 초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사랑하는 것은 결심이다.' 이 말은 보다 나은 혼인 생활에 대한 갈증을 지닌 부부가 앞으로 더 잘 살고 더 사랑하기로 다짐하는 'ME(Marriage Encounter)'의 모토이다.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될 때까지 백년해로하길 소망하며, 나는 오늘도 거울 앞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나의 애창곡, '홍도야 우지마라'를 흥얼거린다.

백발을 휘날리며, 나는 오늘도

어느 날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두발이 백발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 아직은 노티를 드러내기 싫어 염색으로 감추고 싶었다. 짙은 갈색으로 칠하면 그런대로 괜찮아 보이다가 이내 백발이 돋으면 또 감추곤 하였다. 난 이 짓을 한동안 지속했다. 신께서 나에게 주시는 두발의 변화를 거부하고 내 마음대로 다듬었다.

사실 노인의 백발은 신이 주시는 은혜이다. 그건 인생의 연륜을 빛나게 해주는 표지이기도 한 것이다. 노년은 외롭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그래서 노년에는 백발을 휘날리면서 과거를 되돌아보며, 살아온 자신의 삶을 불평 없이 수용하고 전적으로 하느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이어야 한다.

오늘 하루를 살았다는 것은 그만큼 삶의 종말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사람은 언젠가는 돌아간다. 어느 수도원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비명이 있다. "오늘은 네 차례, 내일은 내 차례."


봉사하며 나도 함께 행복한 삶

정성복(68, 가톨릭종합사회복지관 후원자)

나는 삼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서 어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오빠와 언니도 나를 끔찍이도 사랑하며 땅에 놓으면 안 될세라 업어서 키웠으니 말이다. 엄마 젖도 늦게까지 먹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독거노인·장애인을 돕는다는 것

복지관 자원봉사를 하면서 우선 내가 어떻게 해야 즐겁고 행복하게 관계를 잘 맺으며 봉사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먼저 웃으면서 인사 잘하기, 말을 잘 알아듣기, 관찰 잘하기, 잘 살펴보기, 장애인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돕기….
안 할머니(85세) 댁에 갔다. 살아온 생활 이야기도 들어드리고, 숨은그림찾기 빈칸에 숫자 넣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함께해 드렸다.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을 제일 좋아하셨다.

건강은 그런대로 양호하지만, 노인정이나 복지관 이용하기를 싫어하신다. 안 할머니의 경우와 비슷한 독거 어르신들에게 이런 방법으로  해드리는 것도 참 좋을 것 같았다.

내가 훗날까지 자원봉사로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그분들 덕분에 해야 할 일이 생겨서 좋고, 나도 노후가 심심하거나 외롭지 않을 것 같아서 참 좋다고 생각하게 된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어)

도시락 배달 참여하는 날이다. 아침 8시 50분부터 식당에서 도시락에 밥과 국, 반찬을 담아서 도시락 20개를 쌌다. 도시락을 갖다 드렸을 적에 독거 어르신이 누워계시면서 일어나지 않으시면 혹시라도 고독사는 아닌가 하는 마음에 자세히 관찰하게 된다. 도시락 배달은 밥을 갖다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혼자 계시는 분들이 생활은 어떠한지 밤 사이 무슨 일은 없는지 안부를 알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주간보호센터와 중증장애인 일감 지원센터 이용자들이 내가 가면 많이들 좋아한다.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내온 사이 같다. 그들에게서 사람에 대한 따뜻한 정을 느꼈다. 눈썰매장을 갔을 적에는 중증장애인들과 같이 썰매를 타는 것이 두렵거나 겁날 것도 없었고 일반인과 다름없었다. 그들은 조금 특별한 개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뿐이다.

염습과 장례를 도우며

신자인 남편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천주교식으로 장례식을 지낸다고 염을 하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하였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면 그 시대에는 감히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돌아가신 분을 만진다는 건 상놈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하던 시대였으니.

때는 겨울이라 날씨는 상당히 춥고 밤사이 눈이 왔다. 성당 묘지로 올라가는 길은 밑에는 얼음이 얼어있었고, 밤 사이 내린 눈에 발만 옮기면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제일 좋다는 생소나무 관은 무척이나 무거웠다. 관에다 광목천으로 끈을 묶어 가파른 산 위로 운반하는데 앞에서 끌고 양옆에서는 여섯이서 들고 뒤에서 밀어 올리고, 정말 장난이 아니게 많이 무거워서 힘이 들었다.

힘은 들고 피곤했지만 내가 남이 하기 싫어하는 그런 것까지 서슴지 않고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하여 나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고 마음이 뿌듯했다.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들 하며 살기

요즘은 여기저기 취미생활로 내가 즐기는 것, 알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러 다니느라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지만, 오늘 주어진 일에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라는 생각과 행동으로 살아간다.

바쁜 가운데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살아가니 즐겁고 행복하다. 웃으며 기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아름다운 삶이 되도록, 기도하며 신나게 살아내고 있다.


원주투데이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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