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기 전에 통장정리를 해야 한다는 직원의 전화에 차일피일 미루던 은행 볼일을 보러 오랜만에 직접 창구를 찾았다. 폰뱅킹을 넘어 인터넷뱅킹이 일상이 된 후로 모든 은행 업무는 컴퓨터로 처리해왔고, 현금인출도 CD기로 해결하던 터라 은행을 직접 가니 낯설었다.

 인터넷뱅킹으로 가입한 예금은 인터넷에서만 해지가 가능해서 핸드폰에 앱을 깔고 인증서 등록절차를 안내받아 업무를 마쳤다. 옛날에는 통장과 도장만 들고 가면 창구에서 다 알아서 해준 것 같은데 핸드폰으로 적금을 해지하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인증절차를 거쳐야했다. 점점 더 세상이 핸드폰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져 가고 있다.
 

 그러고보니 이미 몇 년 전부터 대학가의 식당이나 까페에서는 주문을 직접 받지 않는다. 스크린기계에서 먹고 싶은 요리나 음료를 선택하고 카드로 결재하면 주문서와 영수증이 나온다. 그걸 들고 창구로 가서 나온 음식과 교환해서 먹는다. 처음 이 기계를 마주했을 때의 두려움이 생생하다.

 뭘 어떻게 선택해야하는지 두 가지를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라서 한꺼번에 결재하지 못하고 셋이서 음료를 마시려고 한 개씩 세 번을 결재했었다. 지금도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자동판매기들은 나를 당황하게 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그럭저럭 사용하는 나도 이런데 도대체 어르신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실까?

 음식점은 아직은 직접 주문을 받는 곳이 많으니 그런 곳을 이용하면 되겠지만 기차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은 도무지 답이 없다. 이제 사람들은 고속버스나 기차를 이용하고 싶으면 하루 전이나 몇 시간 전에 스마트폰을 이용해 좌석을 예매하고 직접 가면 된다. 굳이 창구에 가서 종이티켓을 발행할 필요가 없다. 사실 이는 엄청나게 편리한 시스템이다.

 시간과 인력을 절약할 수 있고 정확한 수요를 미리 파악하며, 종이도 낭비하지 않아 비용절감과 환경보호 효과까지 있다. 이용자도 줄 설 필요도 없고 시간변경도 예매취소도 그 자리에서 가능하니 훨씬 편리하다. 스마트폰과 신용카드를 잘 사용할 줄 안다면 말이다. 그러나 우리사회에는 아직도 스마트폰과 신용카드가 없는 사람도 있고, 있어도 사용을 잘 못하는 사람도 많다.

 특히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은 지금의 시스템을 익히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다보니 주말이면 창구에서 표를 끊고 버스나 기차를 이용하려던 어르신들이 좌석이 없어 대합실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이건 너무 부당한 일이 아닐까? 예약제는 편리하고 좋은 시스템이지만 그것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현장 판매분을 반드시 남겨두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인간의 수명은 매우 길어졌는데 사회변화의 속도는 너무 빠르다. 특히 인공지능의 발전은 눈이 부실 지경이다. 전기도 자동차도 없던 세상에서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 요즘 아기들은 태어날 때 마우스를 들고 태어난다니 이런 스마트한 세상에 맞춤하겠지만 소달구지를 끌고 나무를 주워 땔감을 하던 시대에 태어나 3차 산업혁명을 넘어 4차 산업혁명과 함께 나이를 먹어온 사람들은 이런 변화에 적응하기가 매우 어렵다.

 국가는 노인세대에 대한 사회적 책임에 대해 정책적 고민을 한다. 그러나 어르신에 대한 복지는 일상을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일 것이다. 의식주만이 아니라 스마트하게 바뀌는 현실에서 핸드폰과 신용카드가 없어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세심하고 다양한 장치가 필요해 보인다.

정유선 강원도의회 저출생 고령사회대책특별위원장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