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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구잡록(丹丘雜錄)』을 읽고

홍 판서댁 사료들은 18세기 원주사람들과 공간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살필 수 있어 지역사 빈 곳 채워 나갈 소중한 사료 이동진 전 원주역사박물관장l승인2019.11.18l수정2019.11.1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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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역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단구잡록』은 시기와 저자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선 후기 홍래보의 『국천유고』와 홍순호의 『반창사고』, 작자 미상 시문집인 『단계만록』 등과 함께 모두 단구동 홍판서댁 관련 사료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문집들의 내용이 원주 인근의 풍경을 담고 있는 글들이 많아 번역이 완료되면 원주의 지명은 물론 당시의 자연환경 등 원주의 옛 모습을 조명해 볼 수 있는 사료로, 필자가 근무하던 2016년 해제작업을 시작했다.
 

 1차 해제작업으로 완료한 『단구잡록 초록』을 받아 두었었는데, 근래 꺼내 다시 읽어 보면서 눈에 들어온 글 세 편을 소개하려고 한다.
 

 먼저, 치악산 상원사에 오르는 길을 소개하는 글에서 "치악산(雉岳山) 상원사(上院寺)가 절경임을 듣고서 한 번 유람하고자 생각한 지가 오래되었다. 마침 휴가를 얻어 가는 길에 영원사에 묵었다가 이어 상원사로 향했는데, 암벽은 가파르고 나무는 울창했다. 간간이 폭포가 있고 돌이 울퉁불퉁 솟아 있었다."라고 산을 오르는 길의 풍경을 읊었는데 울퉁불퉁 돌이 솟아 있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또 "상원사(上院寺)에서"라는 시에서는
"하늘은 수없이 넓어 내외(內外)가 없는데 / 제좌(帝座)는 그 사이에 숨 쉬는 듯하네.
오래된 잣나무는 생사(生死)를 반복하며 / 고승(高僧)은 구름 타고 오고 간다.
꿩이 울린 옛 경종(磬鍾)은 남아있고 / 용이 뛰어나간 앞산 보며 전설을 떠 올려본다.
아득하게 석가세존(釋迦世尊) 그려진 바위 보이는데 /위태롭게 솟아 있어 붙잡고 오르기 어렵네."라 기록하고 있다.
 

 앞쪽 3개 연은 대부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상원사 풍경과 전설 내용이다. 그런데 마지막 4연의 '석가세존 그려진 바위'는 처음 듣는 내용으로 상원사 주지 스님(고공)에게 여쭸으나 금시초문이라 한다.

 문득 남대봉 아래 우뚝 솟은 바위 하나를 '남대(南臺)'라 부른다고 들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의 '다음 지도'에서 찾아보니, 예전에 이름도 없던 이 바위에 '세존대'라는 지명이 표시되어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마지막 4연의 주인공이 이 바위가 맞구나! 그런데 누가 이 바위의 지명을 알고 있어 제보했을까? 궁금했다.

 

 다음날 일찍 몇 가지 채비를 갖춰 상원사에 올라 지도의 그 '세존대'를 찾아갔다. 온통 바위 투성이라 험한 지형 때문에 전체를 못 살피고 일부만 봤지만, 그곳에서 "석가세존(釋迦世尊)" 그림은 못 보고 산에서 내려왔다.
 

 두 번째 소개해 드리는 글은 지정면 안창리에 있는 흥법사의 진공대사 탑비에 대한 기록이다. "건등산(建登山) 흥법사(興法寺)는 지금 없어져 비석만 남아있다. 비석의 글은 고려 태조가 지은 것으로 최광윤(崔光胤)에게 명하여 당태종(唐太宗)의 글자를 모아 새긴 것이다.

 후에 원주 관아에 옮겨 두었는데, 어떤 수령이 헛소문에 속아 도랑으로 던졌기 때문에 두 조각으로 쪼개졌다. 지금은 선화당(宣化堂) 서쪽 담 아래에 있는데, 순상공(巡相公)께서 탁본을 뜨고 시를 지어 이를 기록하셨으니"라는 글이다. 현재는 수습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지만 18세기 중후반 선화당(宣化堂)에 있던 비(碑)의 존재를 잘 기록하고 있다.
 

 세 번째 소개 글이다. 지금은 봉산동 당간지주 앞쪽에 있는 봉천 제방 속에 묻혀 흔적을 확인할 수 없지만, 구석정(龜石亭)에 대한 시로 당시의 풍경을 잘 나타내고 있어 흥미롭다. "남곽(南郭) 어르신을 모시고 구석정(龜石亭)을 유람하며"란 제목으로
시절에 알맞은 비가 가볍게 내려 석양을 가렸는데 /소당(小堂)에서 고아한 만남 갖고 돌아갈 일도 잊었네.
 

 봉황이 깃든 개울에는 햇살 아름다워 견줄 것이 없고 /학이 사는 고을에는 차향[茶香]이 아름다우니 참으로 드문 모습이라.
봉우리 그림자 위태롭게 솟아 있고 인영(人影)은 땅에 드리우는데/바둑돌 소리 청아하고, 새 날아가는 소리도 귓가에 들려온다.
이곳에서의 풍류를 헛되이 보낼 수 없으니 /훗날 지팡이 짚고 함께 오자는 약속 저버리지 마시길.
 

 이밖에도 강원감영, 추월대, 입석사 등 원주는 물론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남긴 시들이 들어있다. 지금 단구동 홍 판서댁 인근에 있었을 누정과 다리, 연단석 등에 대한 기록이 풍부하다. 「단구잡록」뿐만 아니라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홍 판서댁 사료들은 18세기 원주를 구성하고 있던 사람들과 공간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살필 수 있어 지역사의 빈 곳을 채워 나갈 소중한 사료다. 지금 박물관에서 추진하고 있는 해제사업이 완료되면 우리는 보다 풍성한 지역 사료들을 만나게 된다. 시민들에게 공개되어 함께 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곧 단풍이 지면 '석가세존 그림'을 찾으러 '세존대' 2차 답사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엔 '석가세존의 그림'을 직접 확인할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이동진 전 원주역사박물관장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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