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가 환자에 맞게 약을 조제하는 것처럼 농업인도 전문지식을 갖춰야 실패하지 않는다." 곽노승(68) 한국쌀전업농 강원도연합회장은 농업도 연구직이라고 말한다. 주위 환경에 맞게, 시대 흐름에 맞게 농사를 지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 

삼십년 가까이 농사를 지으면서 원주농업대학 총동문회장, 강원농업마이스터대학 총동창회장 등을 역임했다. 최근에는 GAP원주시지회장, 원주시부추연구회장을 수행하며 지역농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문막읍 반계리에 벼 6㏊, 부추 1㏊를 재배하며 2억 원에 가까운 조수입을 올리고 있다. 

원래 직업은 회사원이었다. 공고를 졸업하고, 에어컨 제조회사에서 장기간 근무했다. 퇴직 전 그의 직함은 강원도지점장으로 지금으로 치면 억대 연봉자였다. 결혼도 하고 직장도 탄탄하고 연봉도 괜찮았지만 퇴직 압박에선 자유로울 수 없었다.

곽 회장은 "회사가 잘 나갈 때에는 직원들에게 삼대까지 들어오라고 얘기했다"며 "회사 사정이 나빠지면서 명퇴가 확실시 돼 일찌감치 농사로 전업했다"고 말했다. 선친으로부터 땅을 유산으로 받은 것도 농사의 길로 들어서게 된 동기였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회사원이 5㏊나 되는 논을 물려받았으니 눈앞이 캄캄했다. 공고를 졸업해 에어컨 제조회사에서 인생을 보냈는데 벼농사를 지어야 한다니 가슴이 막막했던 것이다.

논을 어떻게 갈아야 하는지, 모내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두 딴 세상이야기였다. 그래서 원주시농업기술센터 원주농업대학의 문을 두드렸다. 그곳에서 벼농사, 친환경농법 등을 익히며 차츰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실패도 부지기수로 했다. 한국농어촌공사가 농지규모화 사업을 진행할 때 지원을 받아 소초면에 농지를 구입했다. 덕분에 쌀전업농 지위를 얻긴 했지만 문막까지 거리가 너무 멀고 농사도 서툴러 얼마 안 돼 농사를 접고 말았다.

농지 구매나 벼 재배에 투자를 많이 했는데 농사를 포기하면서 적잖은 수업료를 치러야 했다. 당시 실패 덕분인지 지금은 문막은 반계리 일대 6㏊에서 체계적인 영농활동을 하고 있다.

한편, 그는 부추농사를 통해 농촌 일자리 창출에 성공했다. 예나지금이나 시골 아낙네들은 남의 논밭에서 대신 농사를 지어주는 일을 한다.

2010년 경 반계리 부녀자들도 새벽4시에 집을 떠나 인제, 양구에 도착해 남의 농사일을 도와주었다. 집에 돌아오면 밤10시가 넘었지만 정작 큰돈을 벌지 못해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를 안타까워하던 곽 회장은 친척 권유로 시작한 부추농사를 규모화하기 시작했다. 부추는 1년에 수차례 수확이 가능해 많은 일손이 필요한 작물이다. 3.3㎡당 소득은 한 때 8만 원에 달해 벼농사보다 20배 높았다.

박 회장은 "백수 친구 네 명이서 부추농사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작목반원이 16명으로 늘었다"며 "예전 반계리 주민들은 멀리 나가서 남의 농사를 도와주곤 했는데 지금은 20~30명이 동네에서 부추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들 못지않은 수익을 창출하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1990년에는 벼농사로도 생활 유지가 가능했었는데 지금은 저가미(米)에 밀려 점점 수익유지가 힘들기 때문. 중앙정부와 지자체에 농업인 지원을 호소해보지만 반영이 안 돼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박 회장은 "예전에 양승조 충남도지사가 쌀전업농 대회에서 농민들이 건의한 사업들을 최대한 들어주겠다고 말해 큰 호응을 얻었다"며 "그것이 입에 발린 말이었건 아니건 간에 농민들에겐 힘이 됐는데 우리 지역에선 그마저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지자체가 농민들에 대한 충분한 지원과 배려를 해줘야만 우리 농업에 미래가 있다고 말했다. 

최다니엘 기자  nice4s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