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닝카페에선 포옹하며 사랑해를 외쳐야 간식을 받는다.

초·중학교에서 활발했던 학생자치회 활동은 고등학교에 진학할수록 뜸한 게 일반적이다. 더욱이 입시를 준비하는 일반고교에서는 적극적인 학생자치활동을 보기 드물다. 하지만 원주여자고등학교에서는 매 주, 매 월 학생자치회에서 주관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학생과 교직원 간 협력과 소통을 통해 자치회 업무 부담을 낮추고, 학업 병행에도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는 원주여고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매주 수요일 아침이면 원주여고 1층에 위치한 모닝카페가 시끌벅적하다. 아침식사를 거른 학생들은 간식과 음료를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선 대기줄에 동참한다. 간식을 받기 위해서는 특별한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반드시 친구 또는 선생님과 함께 들러 '사랑해'라고 외치며 포옹을 인증해야만 간식을 받을 수 있다. 원주여자고등학교학생자치회(회장: 하지영) 아이디어로 시작한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으로 학생 눈높이에 맞춘 깜찍한 기획력이 돋보였다.

원주여고학생자치회는 지난해 강원도교육청으로부터 학생자치회 우수사례로 선정됐다. 학업에 대한 부담감으로 학생자치활동이 뜸한 일반고교에서는 이례적인 사례였다. 원주여고학생자치회가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교사와의 원활한 소통이 밑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구성된 학생자치회와 담당 교사들은 본격적인 활동에 앞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소통창구를 마련했다. 그 중 가장 높은 호응을 얻은 것은 전교생과 교장, 교감 선생님이 참여한 토크콘서트였다. 즉문즉답 형식으로 진행된 토크콘서트는 전교생 누구나 학교장에게 평소 궁금했던 점이나 건의사항을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소통의 거리를 좁혔다는 평가다.

또한, 교장선생님한테 직접 민원을 건의할 수 있도록 교장실 앞에 민원함을 설치해 평소 학생들이 느꼈던 소통 부재를 해소했다. 건의 사항은 검토를 거쳐 즉시 추진된다. 하절기 생활복 착용하기, 시험기간 중 자유복 허용 등은 이러한 과정에서 반영된 의견들이다. 급식 개선을 위한 간담회 역시 영양사와 행정실장, 학년별 학생자치회 대표가 참석해 급식 건의 사항을 전달하고 이를 수렴해 급식 만족도 향상에도 노력하고 있다.

안재은 교장은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의견을 공유하며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 교육이 된다"며 "학교 운영을 위해 학생들의 의견을 가장 중요시 한다는 점에서 주인 의식과 자신감을 심어주게 됐다"고 말했다.

학교과의 소통이 원활하게 되자 학생자치회의 기획력이 날개를 펼쳤다. 30여 명으로 구성된 학생자치회는 모두 9개 부서로 나뉜다. 각 부서는 연초에 한 해 동안 진행할 행사들을 미리 기획한다. 학교게시판에는 학생자치회 주관 행사 포스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학생자치회 임원들은 학업으로 인한 업무 부담감을 서로 협력을 통해 덜어냈다. 부서별로 행사를 추진할 때마다 임원들이 역할분담을 통해 도움을 나누면서 다 함께 운영하는 행사로 이끌어간다.

▲ 매월 열리는 로비&가든 음악회는 학생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이 같은 추진력으로 지난해 도내 학교 중 최초로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다. 올바른 역사의식를 고취하고자 학생자치회에서 교직원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진행한 행사다. 매월 열리는 로비&가든 음악회는 학생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해주는 활동이다. 점심시간을 활용해 진행하는 음악회는 악기 연주, 노래, 댄스 등 학생들의 다양한 음악적 재능을 발산할 수 있는 행사로 교사들도 함께 참여한다. 초반에는 예체능 전공 학생들이 주로 참가했으나 지금은 친구 생일파티 공연을 선보이는 등  일반 학생들도 자유롭게 참여하는 행사가 됐다.

학업과 관련된 다양한 교내 행사도 이뤄진다. 학습 플래너 작성대회, 소설 재구성 대회, 배지 디자인 공모전 등 분야별로 이벤트를 구성해 운영한다. 학생자치회 활동에 무관심했던 학생들은 민원 사항을 적극 수용한 다양한 행사들에 점차 관심을 높이고 있다. 거의 매월 열리는 교내 이벤트는 높은 참여율을 자랑하며, 덩달아 학생자치회에 가입하려는 경쟁률도 높아졌다.

지난 18일에는 일본 돗토리현 교육위원회 교원교류단이 원주여고를 방문해 학생자치 우수사례를 견학하고 학생들과 직접 질의 응답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이들은 전교생이 학교 행사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데 놀라워했다.

하지영 학생회장은 "학생자치활동은 단순한 행사기획을 넘어 경청과 의견제시를 통한 의사소통 능력과 대인관계 등 기본소양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됐다"며 "학교와 소통하는 학생자치회를 운영하면서 학생들이 진짜 원하는 학교로 만들어 가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수희 기자  nmpry@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