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 순간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파리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이 불타고 있을 때였습니다. 전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고 슬픔에 잠겼습니다. 세계인이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 순간, '우리에게도 세계인이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 있을까?'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이번에 중앙아시아를 방문한 대통령께서 우즈베키스탄의 전통종이상점을 방문하셨다는 소식을 보았을 때입니다.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대통령께서 어떤 마음으로 방문하셨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한지라는 문화유산을 지키고 발전시켜보려는 그동안의 노력에 자긍심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3월, '페이퍼로드 10' 행사 준비 차 이탈리아 출장길에서 종이상점 'IL PAPIRO'를 방문하였을 때입니다. 피렌체에서만 6개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고 시에나, 베니스, 로마, 코르토나 외에 미국의 팜비치, 호주의 멜버른, 영국 런던에도 상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주인장의 자부심 가득 담긴 자랑을 들으며 '원주한지의 현실은 어떤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라진 문화를 되살리는 일은 보통 100년의 세월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한지는 우리 민족의 순결함을 상징하는 '백지(白紙)'라고도 불리었고, 99번의 손길을 거쳐 백 번 째 완성된다고 하여 '백지(百紙)'라고도 불리었습니다. 한지는 질기고 강하지만 온유하고 따스한 민족의 품성을 닮았기도 합니다.
 

 예부터 우리는 종이에서 태어나고 종이에 싸여서 다시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했던 시절, 종이를 오려 붙여 형태를 만들기도 하고, 꼬거나 종이죽을 만들어 사용하는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여 종이옷뿐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외 집안의 장식품을 만드는 등 한지를 이용, 생활 속의 멋과 여유를 찾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한지는 오랜 세월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발전해 온 우리의 문화유산이고 우리 조상이 남긴 최대의 선물입니다.
 

 봄이 왔고 축제의 5월이 다가왔습니다. 5월 2일부터 닷새 동안 열리는 원주한지문화제는 21회를 맞이했습니다. 20년의 역사를 넘어선 한지문화제. 이제는 시민의 품격을 지키는데 기여하는 더 유익한 축제가 되고자 합니다. 축제를 통해 시민들과 함께 원주스타일을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원주시민이 우리 종이 한지를 가까이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시민이 한지문화를 경험하고, 우리 종이 한지를 직접 뜨고, 디자인을 입히고, 생활에 필요한 것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종이의 숲'에서 장인과 작가의 숨결을 느끼고 '종이의 길'에서 은은하고 때로는 화려한 한지를 만나고, 1천167명의 청소년들이 각자의 상상력으로 제작한 한지등과 2천500명의 시민들이 만드는 한지등과 그 외 2천여 개의 한지 불빛이 축제가 열리는 2만6천500㎡의 한지테마파크를 빛나게 할 것입니다.
 

 작가와 함께 하는 워크숍, 한지제기차기 경연대회를 비롯한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종이놀이터'와 원주한지에 인쇄된 평양과 금강산의 모습이 담긴 사진전도 보실 수 있습니다. 축제 기간에는 통일부 산하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와 민족문화유산인 한지에 대한 남북교류협력 증진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여 남북한지문화제를 위한 준비도 시작합니다. 우리의 종이로 남과 북을 하나로 이어주는 축제가 되도록 준비하고 노력하겠습니다.
 

 오래전 한지가 가장 많이 생산되고 소비되었던 곳은 관청과 사찰이었습니다. 원주는 강원감영이 있던 곳이고, 최근까지도 인쇄소가 그 주변에 밀집되어 있었습니다. 옛날의 '닥밭골'이 '다박골'로 불리는 감영 뒤편과 좋을 호(好)에 닥나무 저(楮)를 쓰는 호저면의 지명이 남아있는 곳이고, 부론면 법천사, 거돈사, 지정면의 흥법사와 칠봉서원이 있는 원주는 한지와 관련한 많은 흔적을 갖고 있는 도시입니다.
 

 축제를 통해서 원주에 사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한지를 뜰 줄 알고, 한지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하며 한지 위에 손 편지 한번 씩은 써 본 경험을 갖고 있는 미래를 그려봅니다. 그게 원주스타일이 아닐까 합니다.
 

 20년 세월, 시민의 힘으로 역사를 만들어 온 원주한지문화제, 이제 우리가 지키고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뜨거운 사랑과 참여 그리고 아낌없는 성원바랍니다.

김진희 (사)한지개발원 이사장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