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집에서 술을 빚어 마시는 풍습이 있었다. 가문과 지방에 따라 방법과 기술이 달랐고, 지역의 특성을 띤 토속주가 명주로 등장하기도 했다. 조진국(62) 품목별농업인연구회 원주특산주연구회장도 집에서 직접 술을 빚어 마셨었다. 워낙 술을 좋아하기도 했고 시중에서 판매되는 술 보다는 직접 담은 술이 깔끔하고 뭔가 품격이 달랐다.

 하지만 집에서 술을 빚는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그런데 농협원주시지부장으로 퇴직하던 2015년 농업기술센터에서 전통주 담는 방법을 교육하는 강좌가 생겼다. 원주투데이신문에 짧은 기사로 실렸는데 1면 톱기사보다 크게 눈에 띄었다. 기사를 보자마자 신청했다. 전통주 강좌는 생각보다 재밌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의 열정도 남달랐다.

 교육 기간인 3개월이 3일처럼 느껴졌다. 교육을 받은 뒤 매일 술 빚는 재미에 살았다. 20여명의 회원과 만나 술을 연구하고 자신이 빚은 술을 나누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조 회장은 "보통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 퇴직한 사람들이 새로운 삶에 대한 두려움에 힘들어하기도 하는데 나는 서곡에서 농사를 지으며 가양주를 배우는 것만으로도 바쁘고 행복했다"고  지난 4년을 회고했다.

 조 회장이 가양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37년간 몸담았던 농협에 있으면서 쌀 소비를 늘 고민했기 때문이다. 농협대학을 졸업하고 농협에 근무하면서 농민과 가족처럼 지냈다. 농민이 웃으면 같이 웃고 농민이 울면 같이 울었던 조 회장이었다.

 농협원주시지부장으로 근무했던 2012년에는 농협은행 종합업적평가 전국 1위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덕분에 강원도 최초로 정년퇴직이 1년 더 연장되는 영광의 주인공이 됐다. 농협원주시지부는 이후 계속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쌀이 남아 걱정인데 집에서 술을 빚어 마시면 쌀 소비를 늘릴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설명하는 조 회장은 "원주특산주연구회에서 지난 1년 동안 소비한 쌀만해도 1톤 정도"라고 설명했다. 원주시민이 각자 집에서 술을 빚어 마시면 쌀 소비도 늘릴 뿐 아니라 시중에서 판매되는 술보다 더 맛좋고 건강에 좋은 술을 마실 수 있어 좋을 것이라는 게 조 회장의 생각이다.

 가양주 재료는 누룩, 쌀, 물이 전부다. 쌀로 고두밥을 만들고, 물은 반드시 끓인 물을 식혀서 사용한다. 가양주는 일양주, 이양주, 삼양주 등으로 나뉜다. 한번 발효해서 만든 술이 일양주인 막걸리다. 하지만 알코올 도수가 낮아 쉽게 변질된다. 좀 더 오랜 시간 보관하기 위해 알코올 도수를 높이는 기술이 발전됐는데 이양주와 삼양주다. 일양주를 만든 다음 여기에 죽을 만들어 넣으면 이양주가 된다. 여기에 찹쌀 고두밥을 넣으면 삼양주가 된다.

 이렇게 하면 알코올 도수가 18도 정도 되는데 쉽게 변질되지 않는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마시는 막걸리는 8도 정도로 삼양주를 만들어 올리고당을 비롯해 첨가물을 넣어 도수를 낮추는 것이라고 한다. 삼양주는 보통 2개월 정도 걸린다. "가양주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온도다.

 13~18도 사이에서 발효해야 가장 맛있다"고 설명하는 조 회장은 "술이 발효돼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소리가 나는데 가만히 듣고 있으면 세상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은 없는 것 같다"며 했다. 그리고 "고두밥을 누룩과 섞을 때 감촉은 한 번 경험한 사람은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맛있는 술은 이웃과 나눠 마실 때 제 값을 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조 회장에게 실패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 회장은 "4년 동안 술을 빚었는데 아마 절반 이상은 실패해서 버렸을 것"이라며 스스로 만족할만한 술 맛을 내는 데는 3년 걸렸고 2017년 제8회 전국 가양주 주인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이었다. "본선에 올랐다는 것만으로 영광으로 생각하고 집에 오려고 일어나서 나오는데 내 이름이 불려서 얼떨결에 올라가서 상을 받았다"는 조 회장. 100명 중 1등을 했다는 것을 믿기 힘들었다.

 조 회장은 "밑술을 보통 30일에 뜨는 데 단 맛을 잡기 위해 열흘 먼저 떴는데 그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상 수상자는 다음해 심사위원이 되고 대상수상자 모임인 주인회에 참석할 수 있다. 그는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과 만나 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경험"이라고 했다. 전통주와 원주의 특산품을 접목하는 것도 원주특산주연구회의 과제다. 쑥, 아카시아, 연잎, 자색고구마 등을 넣어 술을 빚고 있으며 농업인의 날 행사 등에서 시음회와 시연회를 하며 전통주를 알리고 있다.

 조 회장은 "시민을 대상으로 대중 강좌를 열어 누구나 가양주를 집에서 맛 봤으면 좋겠다"면서 무료 강의나 시음회를 하고 싶다고 했다. 

서연남 시민기자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