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소상공인을 잘 모르나 본데, 우린 원래 다 목숨 걸고 해!"
영화 '극한직업'에서 마약 조직을 쫒던 고반장이 "경찰도 아닌 닭집 아저씨가 왜 이렇게 죽자사자 덤비냐"고 묻는 마약상에게 한 대답이다. 스무번 칼을 맞고도 살아났다는 고반장 만큼이나 치킨집, 편의점, 식당, 미장원, 카페 등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은 하루 하루 살얼음 판을 걷는 듯 불안해서 잠을 못 자고 있다. 임대료 인상, 최저임금 인상, 자재비 인상, 수수료 인상에 유일하게 낮아지는 건 매출과 마진 뿐. 목숨 걸고 버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님은 봉산동 철길 건널목 부근에서 구멍가게를 해 우리 5남매를 키우고 공부 시켰다. 과자, 문구, 담배는 물론 가게 한 켠에 항아리를 묻고 됫박 막걸리를 팔았으며 계절 따라 과일도 팔고 연탄배달도 했다. 매일 5시부터 밤 12시까지 가게 문을 열어 놓으셨고 운동회라도 있는 날이면 교문 앞에 장난감이랑 문구 나부랭이를 가져와 바닥에 좌판을 펼치셨다. 동네 아이들은 가겟집 딸이라고 과자 실컷 먹어 좋겠다고 했지만 부모님이 바쁘시면 가게를 봐야 했고 새벽이면 일어나 달동네에 연탄 배달을 하시는 아버지를 도와 손수레를 밀고 나르고 나서야 등교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 시절엔 간판조차 달지 않은 구멍가게 하나에 온 가족이 매달려 부지런을 떨면 삼시세끼 먹고 살 수 있었고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빚 안지고 공부도 시킬 수 있었다. 지금은 마트다 편의점이다 이름도 바뀌고 간판도 번듯하게 붙였지만 알바생은 진즉에 내보내고 부부가 밤낮으로 붙어 일을 하지만 임대료에 수수료에 은행이자에 인건비조차 건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말이 경영자이지 대다수의 자영업자는 경영과 노동을 동시에 수행하는 자기고용 노동자이다. 중층 하층 자영업자의 소득은 고용노동자보다 못한 게 현실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7년 추산한 퇴직평균 연령은 49.1세다. 50세도 채 못 되어 일자리에서 밀려난다는 뜻이다. 이렇게 회사를 떠나 재취업에 실패한 퇴직자들은 손에 쥔 퇴직금에 융자금을 보태 2억~4억원의 소규모 자본으로 생계형 창업 시장에 뛰어들고, 서로 피 말리는 경쟁을 하다 폐업하면서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2018년 신규 창업자 대비 자영업자 폐업 비율은 72.2%이다. 소상공인 창업 후 5년 내 생존율 또한 30% 미만이다. '목숨건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수치다. 전 세계적으로 보아도 우리나라는 자영업자의 비율이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2018년 말 기준 564만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25%를 차지한다. 바람직한가 여부를 떠나 자영업은 우리 경제의 중요한 한 축이다. 자영업은 국가 경제의 뿌리이며 모세혈관과 같다. 이런 풀뿌리 상권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현 정부 들어서만 5차례에 걸쳐 자영업 대책을 제시할 만큼 자영업의 위기와 붕괴로 인한 서민경제의 파탄이 심각한 상태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소상공인' 지원 부서를 별도로 설치해 독자적인 정책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소상공인을 위해 별도 지원책을 마련하거나 조례 제정을 추진해 늦었지만 다행스럽다. 서민경제에 돈이 돌게 하기 위해서는 취업자의 25%를 차지하는 자영업자의 소득 증대가 필요하다.

 자영업, 소상공인을 독자적 경제 정책의 대상으로 여기고 창업·경영·폐업의 생애주기별 종합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이들을 위해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조성하고 지역별 특성에 맞는 특화된 사업을 추진하는 소상공인 밀착형 정책 마련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용정순 강원신용보증재단 경영관리본부장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