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성동 중화요리점 이화루의 이호학(좌), 박애자 부부

군부대·교도소 안 가본데 없어

지난 19일 학성동 중국집 이화루는 동네 어르신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음식점 주인 이호학(62)·박애자(60) 부부가 짜장면 300그릇을 대접해 작은 가게가 하루 종일 북적였던 것.

짜장면 한 그릇에 어르신들의 입 꼬리가 올라가자 주인장의 어깨도 들썩이기 바빴다. 행사 준비로 9시간 내리 밀가루를 반죽하고 양파를 까고, 짜장을 볶아야 했지만 어르신들의 함박 미소는 그 모든 수고를 감내할 만한 가치를 제공했다. 이 씨 부부는 그렇게 짜장면을 선사하고 행복을 선물로 받았다.

짜장면 선행은 올해가 16년째이다. 2003년부터 시작해 도내 교도소, 군부대, 양로원, 복지 시설 등 안 가본 데가 없다. 대접을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 지금은 경기도에서도 봉사 요청이 들어온다.

덕분에 한 해 2천~3천 그릇 정도 대접했던 것이 어느새 1만5천 그릇을 훌쩍 넘긴 지 오래다.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장애인들도 "짜장면 아저씨, 아줌마 왔다"며 반겨줄 정도로 친숙한 사이가 됐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박애자 씨 친정아버님의 유언 때문이었다. 못 먹고 못 입던 1950~1960년대. 박 씨 부친은 살림이 어려워도 가진 것을 나누기를 즐겨했다. 동냥 거지들을 데려다 밥 한 끼 챙겨주기도 하고, 길거리 동사자를 싸매 장례를 치러주기도 했다.

그렇게 일생을 헌신적으로 산 부친이 돌아가실 때 즈음 "딸아 내가 너에게 못해준 것이 참 많구나. 공부도 더 시키고 학교도 보내줬을 것을……. 내가 못해준 것은 많지만 그래도 너는 불쌍한 노인네들 배곯게 하진 말아다오"라고 부탁했다.

간암 말기로 6개월 사형선고를 받은 친정어머니도 "애자야. 아버지 부탁인데 해야 하지 않겠니? 아버지 마지막 유언인데…"라고 했다. 젊어서 중국집 요리기술을 익힌 남편도 힘껏 돕겠다고 힘을 북돋아주었다.

횡성 둔내에서 어르신 200명을 모시고 식사 대접을 한 것이 시초였다. 사비를 털어 떡을 맞추고 음료수를 준비했다. 전날부터 짜장면을 만들고 배식도 했다. 어떤 이들은 장사치의 얄팍한 수완이라고 비아냥거렸지만 고마움을 연신 표현하는 어르신들을 보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기뻐할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다.

이 소식이 횡성 곳곳에 퍼지자 여기저기서 한 번만 와달라는 부탁이 쇄도했다. 한 번은 횡성실내체육관에서 어르신 1천 명에게 짜장면을 대접한 일도 있었다.

16년간 봉사를 해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군교도소 봉사였다. 자살을 결심한 관심병사가 짜장면 한 그릇으로 마음을 돌이켰기 때문. "이왕 죽을 것 짜장면 한 그릇이라도 먹고 죽어라"라는 상사의 다그침에 젊은 병사는 마지못해 식사를 시작했다.

달달한 짜장면 한 그릇에 고향 부모님 생각도 나고, 잊고 지내던 형제도 떠오르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그 병사에게서 받은 감사 편지 한 통은 이 부부에게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이 됐다. 흔하디흔한 짜장면이지만 이 한 그릇에도 삶의 희로애락이 녹아있다고 부부는 믿고 있다.

한 해 1만 그릇이 넘는 짜장면을 대접하면서 현실적인 문제도 따르고 있다. 그간 사재를 털어 봉사를 해왔는데 지금은 빚이 누적돼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 기업체나 지자체에 후원을 요청해도 도움을 받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호학 씨는 "제 아이도 부모를 따라 10년간 짜장면 봉사에 매달렸는데 지금은 가게에 보탬이 되려고 새로운 직장을 얻었다"며 "8천만 원 정도 빚이 있는데 가게를 운영하면서 갚아 나가기가 사실상 벅차다"라고 말했다.

횡성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다 3년 전 원주 학성동으로 이전한 것도 더 많은 손님을 받기 위해서다. 예전엔 누가 불러주지 않아도 먼저 찾아가 짜장면 봉사를 했지만 지금은 들어오는 요청만 받는 실정이다.

그래도 박애자 씨는 "빚은 많지만 우리 두 내외가 해온 선택이라 후회는 없다"며 "건강이 닿는 날까지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짜장면 한 그릇 더 대접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다니엘 기자  nice4s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