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에 직접 판 전각인장 선물 6년간 120개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를 향해 첫 걸음을 내딛은 김여진(23) 씨는 지난 15일 학위수여식에서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전각인장이다. 김 씨뿐만이 아니다, 김 씨와 함께 졸업한 동기 12명의 손에는 각자의 이름이 새겨진 이 특별한 선물이 쥐어졌다. 선물을 한 주인공은 지난 4년간 김 씨와 친구들을 지도한 상지대 한국어문학과 김종호(52) 교수.

김 씨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라 더욱 소중하고 의미가 있는 선물이었다"며 "평소에도 아빠처럼 다정다감하시고 학생들과 소통을 즐겨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했지만 전각인장을 받고나서 교수님이 우리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새삼 느껴져 뭉클했다"고 전했다.

김 교수가 학생들에게 전각인장을 선물한 것은 2014년부터다. 매년 학기 초 졸업을 앞 둔 4학년들로부터 신청을 받아 졸업식에 즈음해 직접 한자 한자 정성스럽게 새긴 전각인장을 선물하고 있다. 매년 적게는 12개에서 많게는 25개까지. 그동안 김 교수의 전각인장을 받아간 학생은 120여 명에 이른다.

전각인장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제자들에게 무엇인가 선물을 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다. "매년 졸업 때가 오고 졸업생들이 정든 학교를 떠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저들을 가르쳤다기 보다 그들에게 배운 것이 더 많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김 교수는 "무엇인가 내 마음을 담은 것을 졸업선물로 주고 싶었는데 내가 가진 재주로 선물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나의 전각인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전각석을 준비하고 인문(印文)을 만들고 그 다음 새기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무엇보다 대단한 집중력과 전자(篆字)에 대한 이해를 요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이 작업이 시작되면 다른 일을 병행하기가 어렵다.

▲ 김 교수가 제자들에게 선물한 전각인장.

"제자들이 내 나이쯤 됐을 때 인장을 새기던
스승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려주지 않을까 기대"

강의와 연구에 매진하다 보니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칼을 들 수밖에 없는데, 학교 행사나 회의, 그리고 개인적이 일들까지 겹쳐 바쁠 때는 버거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도 짬을 내어 전각을 준비하면 제일 먼저 해당 이름자의 학생 얼굴이 떠오른단다. 그럴 때마다 바쁜 일을 핑계로 다른 생각을 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되고 전각 인장의 새김 과정을 통해 학생과 자신만의 교감의 시간을 갖는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선물 받을 학생을 떠 올리며 노트를 펼쳐놓고 구상을 하고, 칼을 들어 돌과 씨름하는 시간은 오롯이 그 학생만을 생각한다. 두 시간 남짓 김 교수의 손에 꼭 쥐어있던 인장에 새로운 이름이 새겨질 즈음이면 차가운 돌에 김 교수의 체온이 전해져 따뜻한 온기가 감돈다. 김 교수는 "나 아닌 그 누군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짬짬이 느껴오는 생각이 참 많았다"며 "그들이 다름 아닌 내 제자들이기에 더욱 보람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당장은 아니겠지만 졸업한 제자들이 내 나이쯤 됐을 때 방 한 구석에 놓여있는 전각인장을 보게 되면 인장을 새기던 스승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려주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어디를 가고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삶을 만들어갈지라도 그런 마음으로 더 열심히 살아주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으로 앞으로도 내게 학생들이 있고 선생이라는 일을 하는 동안은 이 작업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8년전 서예와 함께 전각에 입문한 김 교수는 현재 강원서예대전 추천작가이자 남농미술대전 초대작가로 한국전각회와 고윤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3회나 입선했을 만큼 실력도 수준급이다.